[화보]가사문학 산실, 면앙정·송강정· 환벽당 거닐다

2019.03.04 11:28:13

광주호 주변 물가 언덕 위에 지은 정자들-1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무등산을 낀 광주, 담양에는 호수와 계곡의 주변에 소쇄원을 비롯한 많은 원림과 정자가 있다. 그 가운데 오늘은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을 둘러본다.

 

정자는 한국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건축물이며, 자연속에 묻혀 살고자 한 한국인의 대표적 조경의 기법이기도 하였다. 강, 계곡,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좋은 곳에는 어디에나 정자를 짓고,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냈으며, 이곳 담양에는 차갑고 추운 가을, 겨울에도 이용하기 위하여 정자에는 한칸 온돌방도 들여서 사계절 선비들이 만나서 소통하는 쉼터로 삼았다.

 

정자는 대부분 경치가 좋은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짓되 정면은 주로 3칸으로 지었으며,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으로 날아갈듯하게 날렵한 멋을 내었다. 정자에 오르면 어디나 많은 시인들이 다녀가면서 자신이 정자에서 느낀 시를 썼고, 그 중에 좋은 시들은 널판에 조각으로 새겨서 정자의 대들보 주변에 붙였다. 많은 시가 붙은 정자는 그만큼 훌륭한 시인들이 거쳐갔다는 것을 뜻한다.

 

면앙정은 송순이 지은 정자로, 송순은 1493~ 1582를 살았는데 나이가 90세까지 살아 당시로는 매우 드물게 장수한 조선 전기 문인이다. 그는 중종때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부유수, 이조판서 등을 거치고, 선조때는 대사헌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겸 춘추관사를 거쳐 77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며 살았다. 그리고 늘 이곳 면앙정에 올라 유유자적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가사로는 유명한 면앙정가가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전에 타계하여 가장 평화로운 시절을 살았다.

 

송강정(松江亭)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1584년 탄핵받고 스스로 물러나 낙향하여 머물렀던 곳에 지은 정자다. 그러나 200여년이 흐른 뒤 원래 송강정은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이 송강정을 다시 짓고 주변 언덕에는 수 천 그루 소나무를 심어서 지금처럼 소나무가 많게 되었다. 지금 송강정은 1770년 세워진 것이다. 송강은 동인의 탄핵으로 이곳에 낙향하여 머물면서 임금이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마치 애인이 마음을 돌려 다시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미인곡과 후속작 속미인곡을 지었다.

 

환벽당(環壁堂)은 사촌() 김윤제()가 지은 정자로, 환벽당(堂)이란 사방으로 푸르름이 둘러있다는 뜻이다. 김윤제는 1501~1572 까지 살면서 나주목사를 지냈으며, 벼슬을 그만둔 뒤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며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의 제자로는 정철과 김성원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광주지방 의병장이었던 김덕령은 그의 종손이다. 환벽당은 광주호 주변 별서원림으로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최우성 기자 cws01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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