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가 말은 하나, 그 말한 바는 알지 못한다

2024.04.30 11:58:31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7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는 원래 저자가 발표했던 「조선광대의 사(史)적 발달과 그 가치」라는 글을 보완, 증보해서 1940년에 조선일보에서 펴낸 것이다.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시대 상황, 곧 1930년대는 판소리와 창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고, 김창환,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과 같은 명창들을 중심으로 하는 25명의 약전(略傳)을 작성한 중요한 자료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래서일 것이다.

 

1964년 이후, 복각본이나 영인본이 나왔고, 얼마 전에는 정병헌이 교주(校註, 교정하여 주석을 붙임)한 《조선창극사》도 발행될 정도로 널리 활용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자료집에는 이훈구, 임규(林圭), 춘원 이광수(李光洙), 김명식(金明植), 김약영(金若嬰) 등의 서문(序文)이 기재되어 있어 당시의 창극조(唱劇調)의 상황을 그림을 보듯 알게 해 주고 있다.

 

지난주, 이훈구의 서문은 읽어보았거니와 일제시대, 독립선언서를 일본 정부 요로에 전달했다고 하는 문인, 임규(林圭)의 《조선창극사》 서문(序文)을 확인해 보는 것도 당시의 창극조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해 주는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임규의 서문 중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대개 사람에게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당행(當行)의 길이 있으니, 춘향의 정렬, 심청의 지효, 흥부의 우애, 별주부의 충성은 다 이것을 상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관감(觀感), 흥기(興起)하여 그 길을 밟게 함에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즉, 창극의 윤리상에 관계됨이 어찌 크다 하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가석(可惜)한 것은, 이 창극이 다행히 위로 향하여 교화(敎化)의 일조가 되지 못하고, 불행히 아래로 흘러 일종의 완희물(玩戱物)이 되고 말았다.”

 

위로 향해 세상을 가르치는 교화는 어렵다 해도, 아래로 흘러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다시 말해 창극조에 있어서는 종목마다 지닌 정렬이나 지효, 우애, 충성, 등 등, 윤리상(倫理像)이란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당시의 창극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다만 희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오늘의 창극조를 이어가는 새로운 세대에게 그 크고 깊은 뜻을 강하게 전해주고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당시, 일제시대의 창극조는 세상을 밝게 가르치는 교화의 목적은 잃어 버렸고,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그의 주장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어서 그의 말이다.

 

“그리하여 저 몰상식, 무질서한 창우배의 수중에서 이와전와(以訛傳訛), 지리멸렬, 심하면 그 의의가 나변에 재(在)한지, 앵무능언이(鸚鵡能言而) 부지기소이언 (不知其所以言)이라는 기자(譏刺)를 면하지 못하고, 금일까지 이른 것이다." <아래 줄임>

 

위의 문장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저 몰상식하고, 무질서한 창우배, 창우는 예칭이 광대이며 전통예술에 종사하던 예술인들을 일컫던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그릇된 말이 자꾸 확산하어 진실함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거나, 또는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 의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앵무새가 능히 말은 하지만. 그 말한 바를 알지 못한다는 말처럼, 남을 헐뜯고 비꼬아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금일까지 이른 것이다.”

 

이 말은 극히 일부에서 일고 있는 단편적 현상이겠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연행되던 대중문화의 실제를 살펴보는 데 있어 귀중한 참고가 되고 있다.

 

 

이 글을 쓴 임규(林圭)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3,1만세운동 당시 최남선은 임규의 일본인 부인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임규는 일본 정부 요로에 독립선언서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 일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글은 이렇게 맺고 있다.

 

“창극의 비조인 하한담, 최선달로부터 금일 생존자까지 남녀 명창 89인을 수집하여 그 계통을 소상히 하고, 또 그 신묘불가측필단(神妙不可測筆端)으로 형용할 수 없는 더늠(그 창 전편 중에서의 광대의 최장점) 또 뉫제, 제=권생원제, 송흥록제(제는 근일어의 식(式), 류(流)의 뜻)라는 것까지 일일이 수습하여 독자로 하여금 수백 년 후에 앉아서 수백 년 전의 명창의 소리를 친히 듣는 느낌이 있게 하였으니,” (아래 줄임)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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