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의 ‘군더더기 없는 꽃' <꽃 피는 산수골>

2024.05.07 11:26:58

용인 김명식아트센터에서 8월 3일까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작업실로 가셔서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하시지요. 이 매실차는 제가 집 텃밭에 심어 가꾼 매실로 담근 차입니다.” 은은한 노란빛 매실차를 손수 찻잔에 따라 준 이는 서양화가 김명식 화백이다. 작업실 큰 유리창이 액자처럼 보이는 5월의 정원이 아름답다. 김명식 화백은 용인시 처인구에 작업실과 아담한 미술관인 ‘김명식 아트센터’ (관장 김희종)를 마련하여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칠순의 현역 작가다.

 

사흘 전 (4일, 토요일) 낮 1시, ‘김명식 아트센터’를 함께 찾은 이는 미국 LA에서 잠시 고국을 방문 중인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을 지낸 배국희 (81) 씨였다.

 

“이 선생님, 사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함께 가 주실 수 있는지요? 숙소에서 좀 먼 곳입니다만...” 사실 서울에서 용인은 그렇게 먼 곳이 아닌데도 이날은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주말이라 길이 막혀 아침 10시, 인사동 호텔을 출발한 지 무려 3시간 이상을 승용차로 달려 ‘김명식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김명식 화백의 그림 가운데 저는 ‘집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김 화백의 ‘집 시리즈’들은 무어라 할까? 그림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답니다. 하얀 집, 까만 집, 초록 집, 노란 집... 물론 꽃 그림들도 아주 좋아하지요.” 배국희 씨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평소 김명식 화백의 그림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말해주었다. 솔직히 말해 미술 특히 서양화에 대한 식견이 없는 기자지만 왠지 빨리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도착한 ‘김명식 아트센터’ 안에 들어서자 ‘꽃 그림’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액자 전체에 커다란 꽃송이가 그려져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작은 액자 12개로 구성된 작품도 있다. 꽃 그림이 펼쳐지기 전에 ‘작업 노트’가 전시장 입구에 걸려 있었는데 첫 구절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2004년 봄, 어느 날 작업실로 가는 뉴욕 7트레인 전철 안, 우연히 창밖을 보는데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집들이 사람 얼굴로 보였다. 하얀색 집은 백인, 까만색 집은 흑인, 노란색 집은 동양인으로... 그들은 며칠 전 소호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던 사람들이었다.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집들을 미친 듯이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다”. 동행한 배국희 씨가 좋아한다는 이른바 ‘집 시리즈’의 탄생 비화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잠시 감상하고 있는데 작업실에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던 김명식 화백이 전시장으로 직접 나와 그림을 설명해 주었다. 전시장은 2층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1층에서는 '팝플라워(Pop Flower)'작품 70여 점, 2층에서는 판화 40여 점과 김명식ㆍ이달아 작가의 협업 아트백 작품 20여 점 등 모두 130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팝플라워’ 라는 말은 기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이지만 이는 김명식 화백이 1990년 초 고데기(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옛 이름)’ 시리즈에서 간간이 보였던 이름 모를 들꽃들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2004~2005년 2년 동안 뉴욕에 머물며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작업과 함께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팝 플라워는 비교적 빠른 붓놀림으로 대상이 지니고 있는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1층 전시장에서 마주한 환상적인 분홍빛 꽃 두 송이가 그려진 작품이 바로 ‘군더더기 없는 꽃'을 표현한 것 같아 나의 시선을 오래도록 끌었다.

 

 

2층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1990년 초 유화 작업과 함께 추구해 온 판화 작품들로 김 화백은 지난 30여 년간 제작한 판화가 50여 종에 이르며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를 이번에 전시 중이다. 아울러 '김명식ㆍ이달아 협업작품에 시선이 꽂혔는데 여성들이 좋아할 ‘아트 백(가방)’이 그것이다. 아트 백을 만든 이달아 작가는 일찍이 캐나다 블랑슈 맥도날드 센터(Blanche Macdonald Centre)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앙대학교 패션디자인과에 출강 중으로 여러 가지 천과 오브제를 이용, 뛰어난 컬러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든 품격 높은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이번 신춘기획전 <꽃 피는 산수골> 전시장에는 김 화백의 ‘집 시리즈’ 작품은 전시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김 화백은 멀리 미국 LA에서 달려온 배국희 씨와 기자를 위해 우리를 작업실로 안내해 주었다. 눈부신 정원의 햇살이 아름다운 작업실에 들어서자 수많은 ‘집 시리즈’ 작품들이 햇살의 고운 빛을 투영해 서로의 빛깔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노란집은 더욱 노랗게, 빨간집은 더욱 빨간 빛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집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초고층 아파트 밑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마주한 그림 속의 집들은 하나 같이 키 낮은 주택의 모습이다. 어딘가 어수룩한 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의 모습 같아 정겨웠다.

 

 

 

“맨해튼까지 전철로 오가면서 차창에 비친 주택들과 그리고 도시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인종의 얼굴이 오버랩된 데서 영감을 얻었다. 색은 조금씩 달라져도 의외로 집의 형태는 서로 닮아있다.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 보금자리 안에서 휴식과 사랑을 나누며 꿈꾸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혹은 몽환적으로 풀어나간다.”라고 했던 이재언 미술평론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집의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천루처럼 올라가는 초고층 집, 천정을 알 수 없는 집값, 집이 고급이듯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가 고급이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일반인들의 정서다. 그래서일까? 작업실에 차곡차곡 그려 놓은 ‘집 시리즈’ 작품들이 유독 가슴에 와 박힌다.

 

“앞으로 일본과 미국 등 전시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어서 요즘은 열심히 ‘집’ 그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품에 몰두해야 할 작가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듯하여 내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김 화백은 스스럼없는 마음으로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우리를 대해주었다. 햇살 가득한 작업실에서 우리는 집에 대하여, 집에 살고 사람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려고 하자, 정원 옆에 딸린 텃밭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와우! 고추모와 감자, 상추 등이 주인을 닮은 듯 정갈하게 자라고 있었다. 기꺼이 김 화백은 상추밭에 앉아 상추잎을 따기 시작했다. “이거 싱싱한 거니까 가서 잡숴보세요” 손수 가꾼 푸성귀를 선물로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인간적인 예술가의 마음’이 빚은 예술의 깊이를 다시 음미해 보았다.

 

김명식 화백은 2015년 동아대 교수로 정년 퇴임한 뒤 지난해 용인에 김명식 아트센터를 개관한 이래 이번 <꽃 피는 산수골> 전시가 두 번째다. 그동안 도쿄, 뉴욕, 상하이, 마이애미 등 나라 안팎에서 8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꽃 피는 산수골' 전시 안내】

 

*전시기간       : 2024년 3월 7일(목)~8월 3일(토)
*개관시간       : 오전 11시~오후6시(일,월,화,공휴일 휴관)
*최종입장마감 : 오후 5시 30분
*전시장소       : 김명식 아트센터
*주소             :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원천로 41번길 42-8
*문의             :  031-333-6055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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