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에서 평민으로 그 머나먼 여정에 섰던 ‘수봉이’

2014.11.06 07:13:36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89]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수봉은 꾸준히 재산을 모아 노비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는데 성공했다. 평민이 된 그는 노비라는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했다. 성씨를 얻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성씨는 삼국시대 왕족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귀족을 거쳐 고려시대에는 일반 평민들도 대개 성을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들도 점차 성씨를 얻어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노비들은 이름 외에 성이 따로 없었다. (줄임) 양반들은 자신의 가계를 좀 더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가계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책을 낸 권내현 교수는 이 책에서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이라는 흥미로운 추적을 해나갑니다. 수봉은 바로 노비 출신으로 갖은 노력과 우여곡절을 거쳐 성과 본관 이름을 모두 갖추게 되어 결국에는 평민으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많은 노비들은 성과 본관이 모두 없었는데 일부 노비 가운데는 성이나 본관 가운데 하나를 호적에 올린 사람도 있고 갓동(개똥), 막동, 석석이처럼 이름만 오른 사람도 있지요. 이는 1678년의 호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권내현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수봉이 살았던 도산면 호적에는 모두 312호가 기록되어 있는데 권내현 교수가 312호를 모두 조사해보니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은 전체의 59%인 184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평민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이 노비였던 것이지요. 수봉의 호적에는 그의 주인이 적혀 있는데 단성현(경상도)에 살고 있는 심정량이라는 사람입니다. 심정량의 호적에는 수봉을 비롯한 59명의 노비가 올라있었으며 노비가 된 사연은 각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무렵 노비들은 수봉이처럼 노비 신분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생을 살았던 사람이 많았고 실제로 수봉이처럼 노비 신분을 벗어난 사람도 있었으니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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