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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잊으라”는 일본 언론을 꾸짖는다

핵심 빠진 한일 수교 50주년을 보도한 NHK방송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어제 저녁(22일) 9시 일본 NHK는 한일수교 50주년 특집 방송을 했다. 한국지국장과 리포터가 서울에서 취재한 방송을 내보내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화면은 생기발랄한 소녀들을 비춘다. 일본 아이돌 가수를 흉내 낸 듯한 요란한 화장을 한 소녀들 입에서는 연신 “일본이 좋아요”를 외친다. 이어서 어여쁜 미모의 리포터가 한국의 일본애니메이션이 좋아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는 한 고교생 집을 방문하여 그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방송한다. 꽤 유창한 일본어로 ‘이 다음에 한일문화의 가교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그는 연신 행복한 모습이다.

 

   
  NHK에서 한일수교 50주년 기념 서울 취재 기사, 한 여성이 '일본 아주 좋아해요'라고 하는 모습,(NHK화면 갈무리)

문제는 그의 학교 친구들에게 있는 듯 화면이 전개된다. 교복을 입은 친구 두 명은 역사교과서를 펼쳐 보이며 다소 어둡고 무거운 표정을 보인다. 화면은 ‘10여 쪽에 이르는 일본 침략의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의 소감을 묻는다. 제 정신이 박혀 있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일제강점의 역사에 대해 기쁜 모습으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가 겪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겨우 10쪽으로 배우는 것도 부족한 일이지만 그러한 역사 교육을 마치 “청소년을 암울하게 하는 역사, 청소년이 한일관계에 밝은 모습을 갖지 못하게 하는 원인” 같이 보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세기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의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피맺힌 역사’이다. 적어도 침략의 당사자인 한국인에게는 그러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그렇고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철도와 비행장 건설, 탄광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또한 씻을 수없는 침략의 피해자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5백년 사직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대대로 지켜오던 문전옥답도 토지조사라는 명목으로 몰수 되어 정든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된 것도 일제 침략의 슬픈 역사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침략의 고통을 당한 세대가 또렷한 목소리로 역사를 증언하고 있기에 침략의 역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점은 일본 역시 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가 전쟁의 폐해를 들어 두 번 다시 ‘군국주의 부활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좋아 일본어를 배웠다는 한 고교생 집에 가서 취재하는 NHK기자(NHK 화면 갈무리)

텔레비전 화면은 다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 내에서의 심포지엄과 위안부 할머니 동상 앞에서 시위에 참가하는 모습, 한일친선교류단체의 활동 모습 등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 알맹이는 ‘가해국 일본의 시선’에서 바라다 본 ‘한일관계’다. 국민대학의 이 아무개 교수 인터뷰가 그를 입증한다. “일본의 경제 원조로 한국의 경제 발전을 한 것은 맞는 말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야 말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신물 나는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살해대금으로 받은 알량한 몇 푼의 돈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루었다는 논리란 말인가!  

화면은 한 술 더 떠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쓴 박 아무개 교수를 인터뷰한다. “위안부의 강제성을 거의 찾기가 어렵다.”라는 논조의 책이 “객관적이라는 해괴한 타이틀”로 포장된 채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문제라도 있는 양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일수교 50주년의 시각차를 여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이런 시각으로 50주년 기획 기사를 내보내어 ‘침략 역사에 무딘 일본인들이 아무 잘못도 없는 자국의 역사로 인식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또 다른 벽을 만드는 일이며 정견(正見)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침략 역사의 무자비함과 참혹함을 망각한 상황에서 표피적인 ‘몇몇 한국인의 모습 같은 것’으로 한일수교 50주년을 다룬 이번 NHK 보도는 ‘깊은 알맹이가 빠진’ 아쉬운 보도였다. 어떠한 미사여구라 할지라도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가 빠져버린 이야기’ 는 김빠진 맥주와 다름없다.

 

   
'위안부여성의 강제는 거의 없었다'는 내용의 책과 저자를 다루면서, 마치 이것이 객관적인데 한국인이 생떼(?)를 쓰는 양 보도했다 <NHK화면 갈무리>

왜 NHK는 일본 침략시기에 교토 단바망간 탄광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 이야기나 큐슈 치쿠호 탄광에서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다 배고픔에 숨져간 조선인 강제노동 이야기에 눈을 감는가? 왜, 꽃다운 처녀들이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살았어야 했는가에 카메라 앵글을 돌리지 않는가? 되묻는다면 일본의 언론은 제국주의 군홧발에 신음해야했던 조선인의 삶을 수교 50주년이 되도록 언제 한번 제대로 조명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도 알려주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는 양국 시민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야 수교 50주년의 과정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을 비춰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인다.

 단순히 ‘지금, 현재, 오늘, 이 순간’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서야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현재는 항상 누구나 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이 있는 보도는 그런 껍데기에 있지 않다. 한일수교 50주년에 갖고 있는 한국인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아닌 ‘일본 구미에 맞는 50주년 보도’에 깊은 유감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