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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 조선글날, 《훈민정음》 복간본 북한에 기증하자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월 15일은 북한의 한글날인 조선글날로 훈민정음기념일이라고도 한다. 북한이 이 날짜로 삼은 것은 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자에 “이 달에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어 12월 가운데인 1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1월 15일이다. 남한은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낸 1446년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념일을 기리는 것이 분단의 상처일 수는 있지만 훈민정음 창제일, 반포일 모두 소중하니 남북이 서로의 기념일을 존중해 준다면 오히려 통일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창제일을 언제로 정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창제일이 소중한 것만은 분명하다. 창제가 있었기에 반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는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큰 혁명이며 기적이었다. 더욱이 세종이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 담긴 역사적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세종대왕 어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아직도 많은 국민은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창제했다고 알고 있고 일부 교과서에조차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많이 보는 서울대 한국어교재는 한글을 세종의 명령으로 집현전 학사들이 창제한 것으로 잘못 기술하고 있지만 한글은 세종이 단독 창제한 것이다.

세종 시대를 비롯해 조선시대는 사대부들이 한자 이외의 글자 창제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였다. 그들에게 한자는 절대 권력이었고 학문과 사유의 절대 도구였기에 새로운 글자는 상상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한글 반포 이후 조선이 망하기 직전까지도 학문과 공적 문서를 철저히 한문 번역으로 유지해 갔고 일부 문학과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정도에서나 겨우 한글을 사용하였다.

세종은 무려 창제 17년 전부터 법률문을 백성들한테 가르치고 전달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세종은 한문과 이두의 절대 모순에 눈을 뜨고 1434년에는 만화를 곁들인 한문책 <삼강행실(도)>을 펴내지만 그조차도 문제가 많아 아예 서당조차 갈 수 없는 백성들조차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창제한 것이다.

한글은 문자 권력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틀을 깸으로써 신분 해방의 불씨를 안고 있는 혁명의 글자였다. 그리하여 양반 사대부들은 한글을 철저히 이류 문자로 묶어 불씨를 예방했지만 그것이 결국 지식과 정보의 독점으로 이어져 조선 패망의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대부들의 한자에 대한 신화를 잘 알고 있었던 세종은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창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완벽하게 28자를 창제한 뒤 서서히 세상에 알려나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글은 한자음을 적을 수 없는 중국의 천 년 이상의 모순을 해결하여 양반들 한문 공부와 성리학 연구에 도움이 되었기에 최만리 외 6인의 한글 반포 반대 상소는 단 한 건에 그쳤다.

 

   
▲ 《훈민정음 해례본》 복간본, 간송미술문화재단ㆍ교보문고, 김슬옹 교수의 해설서 포함


세종의 한글을 통한 원대한 꿈을 이해한 7명의 집현전 학사들(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과 돈녕부주부였던 강희안 등 8명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 배경과 원리 등을 당대 최고의 음양오행의 자연 철학과 음악 사상, 현대 언어학 수준을 뛰어넘는 최고의 학문을 동원해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냈고 그 초간본인 간송본이 2015년에 복간되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한글 창제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창제일은 반포가 있었기에 빛이 난다. 그렇기에 함께 기리자는 것이며 기념일에 전문가만이라도 상호 방문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직접 창제 기념식은 못할망정 북한의 기념일에 복간본을 기증하여 창제와 반포의 참뜻을 함께 기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