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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터, 이제 꿈이런가?

[답사] 강화 고려궁터외 강화산성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강화 고려궁터에는 두 가지 역사가 묘하게 겹치는 곳이다. 고려궁터니까 말 그대로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자리여야 하는 데 실제 가 보면 휑한 궁궐터엔 조선시대 외규장각 건물과 강화유수부 동헌이 턱하니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가 겹치는 것이란 바로 이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찌된 사연인가?

 

   
▲ 고려궁터에 자리잡은 외규장각

 

   
▲ 외규장각 안에 있던 수많은 조선의 문헌들이 프랑스의 약탈로 강탈당했다. 사진은 외규장각에 전시된 유물

 

개성에 있어야하는 고려궁궐이 강화로 옮겨오게 된 것은 고려 고종(19년, 1232)이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겨 온데서 유래한다. 이때 옮겨온 도읍터가 고려궁터로 원종 11년(1270) 개성으로 환도하기 까지 39년간 사용했던 궁궐이며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궁궐 뒷산도 송악이라 했다.

 

   
▲ 전상갑 문화해설사가 이곳을 찾은 관람객에게 고려궁궐터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고려궁의 정문은 승평문으로 양쪽에 3층루의 문이 2개 있었고, 궁내에 많은 관아·전각·창고·문이 있었으나 1270년 송도환도 때 모두 허물어졌다. 당시 규모는 정궁(正宮)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行宮·離宮·假闕)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 숙종때 만든 범종으로 고려궁궐터 안에 있으나 이것은 복제품(진품은 강화역사관 소장)이다. 그렇다면 관람이나 제대로 하게 범종각을 달리 설계해야 할것이다. 현재 것은 종집(범종각)이 종을 싸감고 있어 종을 감상하기 어렵다

 

그 뒤 오랫동안 이곳은 잡초가 무성한 ‘고려궁궐터’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인조 9년(1631)에 이 터에 조선의 행궁을 짓게 된다. 조선 조정은 이곳에 장녕전을 지어 조선 태조와 세조 영정을 모셨고, 강화유수부 건물들과 규장외각을 건립해 많은 장서와 문서를 보관했다.

그러나 구한말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東軒)과 이방청(吏房廳)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곳을 돌아보며 가슴 아팠던 일은 이곳 외규장각에 있던 조선왕조의 귀중한 문서들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일이다.

 

   
▲ 삼별초뱃길탐험대장인 채바다 선생은 일부러 제주에서 고려궁궐터를 찾아와 삼별초와 고려에 관한 많은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모질고도 험한 역사의 현장이 고려궁터이다. 어제 찬바람이 볼을 스치는 가운데 고려궁터에 도착하니 전상갑 문화해설사가 고려역사와 함께 고려궁궐터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해주어 고려와 조선에 이르는 고려궁궐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사람은 고대해양탐험가이자 삼별초뱃길탐험대장인 채바다 선생과 함께였다. 채 대장은 몽고에 항전한 삼별초군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어제 일부러 고려궁터 답사 차 건너와 동행하게 되었다.

 

   
▲ 고려궁궐 발굴 안내판, 저렇게 발굴해놓고도 복원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 고려궁궐터에는 천주교 성당이 자리하고 있으며(왼쪽), 외규장각 뒤쪽(오른쪽)으로는 휑한 터와 볼품없는 집들이 난잡하게 들어서 있어 안타까웠다.

 

지금은 썰렁한 궁궐터를 돌아보며 채바다 대장은 “고려궁터는 지난간 옛 꿈이란 말인가? 이곳에 와서 볼 때마다 안타깝다. 궁궐입구에 버젓이 자리 잡은 천주교 성당을 비롯한 크고 작은 건물들을 정리하여 하루빨리 고려궁궐터를 성역화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전국에서 고려궁터를 보러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특히 충북 제천에서 역사교사들과 함께 답사차 들른 김진숙 지사장(어울림인재개발원)은 “역사의 현장에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고려궁터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겨레의 국난 극복을 위한 역사적 교훈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고 했다.

 

   
▲ 고려궁궐터라고 하면 좋을 것을 '고려궁궐지'라 했다. 주차장에 세워진 것(왼쪽), 강화군시설관리공단에서 나온 홍보물에도 '고려궁궐지'이다(오른쪽)

 

현재의 고려궁터는 1977년에 보수 정화한 것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둘러보는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784년 전 항몽의 역사를 간직한 고려왕조의 역사적 의미와 이후 조선왕조의 행궁 터로 그리고 구한말 외세의 침략으로 빚어진 문화재 약탈이라는 숨 막혔던 시간을 반추하기에는 결코 작은 규모의 역사현장이 아니다.

 

   
▲ 강화산성 북문인 진송루, 오른쪽으로 산성 마루에 오르는 길이 있다.
 

 

 

▲ 고려산성은 7킬로에 이르며 사진은 북문에서 오르는 산성길로 꼭대기에 오르면 강화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전국에서 고려궁궐터를 찾아온 답사자들, 특히 충북 제천의 역사 교사들의 열의가 빛났다.

 

고려궁궐터를 둘러보고 시간이 된다면 고려산성을 둘러보면서 역사속의 “고려”에 대한 폭 넓은 사유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뜻깊을 것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강화읍)  문의: 032- 930-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