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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만(小滿), 보릿고개가 슬펐던 때

[한국문화 재발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으로 이즈음 정경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4월은 맹하(孟夏) 곧 초여름으로 입하와 소만이 들어 있다고 노래한다.


 

오늘은 24절기 여덟째 소만(小滿)”으로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온 세상에 가득 찬[滿]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데 들판에는 밀과 보리가 익고, 슬슬 모내기 준비를 한다. 또 이 무렵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대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우리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온 천지가 푸른데 대나무는 누레져

 

그런데 소만 때는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준 대나무만큼은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봄의 누레진 대나무를 가리켜 대나무 가을 곧 죽추(竹秋)”라 하는데 이는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것과 같다.

 

또 만물은 가득 차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구황식품(흉년에 곡식 대신 먹는 먹거리)을 구해야 할 때다. 그래서 소만은 우리에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다고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준다.


 


참고로 음력 513(양력 76)은 죽취일(竹醉日)이다. 이날은 대나무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버린다 하여 대나무를 옮겨 심는다. 대가 취해서 어미 대에서 새끼 대를 잘라내도 아픈 줄 모르고, 어미 곁에서 멀리 옮겨 심어도 어미 곁을 떠나는 슬픔을 알지 못한다는 믿음이 전하는 것이다.

 

유만공(柳晩恭)세시풍요(歲時風謠)“513일을 죽취일이라 하여 대나무 생일이라 하고 대나무를 옮겨 심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죽취일을 단오제보다 더 큰 명절로 꼽았는데 대나무를 심고 죽엽주를 마시며, 화전놀이와 폭죽놀이로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빌었다고 한다.

이 무렵 세시풍속에는 봉숭아물들이기가 있다. 봉숭아(봉선화)가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동지팥죽을 먹고, 산수유열매를 머리에 꽂고, 혼인하는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는 것도 같은 풍속이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선화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보릿고개

 

다북쑥을 캐네 / 다북쑥을 캐네 /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를 넘어가네 / 푸른 치마 붉은 머리 허리 굽혀 쑥을 캐네 / 다북쑥을 캐어 무얼 하나 눈물만 쏟아지네.” 다산 정약용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쑥을 캐어 죽을 쑤어 먹는 백성들을 보고 쓴 다북쑥이란 시다.

 

죽도 곡식과 함께 쑤어야 죽다운 맛이 나는데 쑥만으로 죽을 쑤었으니 그거야 마지못해서 허기만 때우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쑥이나 나물을 먹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이즈음 소만이다.

 

해주 인민들이 흙을 파서 먹는 자가 무릇 30명이나 되었으며, 장연현에서는 두 사람이 흙을 파서 먹다가 흙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위는 세종실록26(1444) 426일 기록이다. 얼마나 먹을 게 없으면 흙을 먹었을까? 조선시대 대부분 가난한 백성은 이렇게 가뭄과 큰비로 흉년이 들면 먹을 것이 없어 흙까지 먹을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백성의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가장이 먹고살 것이 없자 자살하거나 식구를 버리고 도망간 것은 물론 자식을 팔아 끼니를 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 먹거리 대신 목화씨를 먹고 죽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기까지 나온다. 영조실록에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기관인 경상도 진휼장(賑恤場)에는 굶은 백성이 179865, 떠도는 거지가 11685, 사망자가 1326명이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굶는 백성의 숫자는 엄청났다.

 

보릿고개를 한자로 쓴 맥령(麥嶺)”과 더불어 춘기(春饑)”, “궁춘(窮春)”, “춘빈(春貧)”, “춘기(春飢)”, “춘기근(春飢饉)”, “춘궁(春窮)“, ”궁절(窮節)” 같은 여러 가지 말들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올 정도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보이는데 193167일 자 동아일보의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개를 못 넘어 죽을지경"이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았다. 보리는 소화가 잘 안 돼 보리방귀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보리방귀를 연신 뀔 정도로 보리를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방귀 길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속담이 나왔을까?

 

보릿고개 나는 법, 부잣집 문 앞 쓸기와 산나물 뜯어다 놓기

 

그러나 우리 겨레는 맘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예부터 가난한 사람이 양식이 떨어지면 새벽에 부잣집 문 앞을 말끔히 쓸었다. 그러면 그 집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보고 하인에게 뉘 집 빗질 자국인가?”하고 물었다. 그런 다음 말없이 쌀이나 보리 같은 양식을 하인을 시켜서 전해줬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가 하면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진 집의 아낙들은 산나물을 뜯어다가 잘 사는 집의 마당에 무작정 부려놓는다. 그러면 그 부잣집 안주인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곡식이나 소금된장 따위를 이들에게 주었다. 물론 부잣집에서 마당을 쓸라고 한 적도 없고, 산나물을 캐오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쌀이나 보리를 건네주는 것은 마당을 쓸거나 나물을 캐온 데 대한 보수나 대가가 아니라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돌 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자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이면 이 때 쓰기 위해 농곡(農穀)”이라는 곡식을 따로 비축해 놓았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우리 겨레는 까치밥 남기기, 고수레 뿌리기, 입춘공덕행(입춘에 아무도 몰래 좋은 일 하기), 담치기(어려운 이웃의 담너머로 곡식을 던져 넣는 일), 이레놀음(쌀을 성의껏 거두어 먹거리와 술을 마련하여 마을 어른들께 드리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풍속) 등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동을 실천했던 것이다. 현대문명의 각박함 속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