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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한장의 엽서로 떠나는 일제강점기 수학여행

[전시] 인천관동갤러리, “80년 전 수학여행 -경성에서 하얼빈까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을 가진 사람에게는 누구나 설레는 말일 것이다. 수도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자의 경우 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는 서울로, 70년대 초 중학교 시절에는 천년 고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단체 버스를 생각할 수 없던 시절이라 수학여행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철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느려터진 완행열차였지만 급우들과 함께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차창 밖에 펼쳐진 낯선 풍경들에 가슴 떨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러한 수학여행의 추억을 살펴볼 수 있는 뜻 깊은 엽서전이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열리고 있다. 그것도 80년 전인 1938년 간도성 용정(현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주 용정시)의 동흥중학교 졸업 앨범에 나와 있는 수학여행 코스를 따라가는 풍경과 학생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전시인 만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지난 4일 일요일 오전 전시장을 찾았다.






아직 관람객이 오지 않는 한가한 시간에 기자는 “80년 전 수학여행 -경성에서 하얼빈까지-” 전시에 소개된 120여장의 엽서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펴보았다. 간도 용정이라면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곳이요, 동흥중학이라면 몇 해 전에 들린 곳이 아니던가? 그곳의 학생들이 열차를 타고 용정을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넜다. 그리고 회령에서 웅기(현 라선시)로 다시 성진(현 김책시)을 거쳐, 청진을 지나, 금강산에 올랐다.


금강산 구경을 마친 학생들은 다시 경성(현 서울시)을 구경하고 평양을 거쳐 압록강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는 만주국 안동(현 단동시), 대련을 거쳐 당시로는 신경(新京)이라 할 만큼 대도시가 된 현재의 장춘시와 봉천(현 심양시), 하얼빈, 목단강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1938년, 중국 용정의 동흥중학생들이 조선을 거쳐 만주일대를 돌아보는 이러한 수학여행은 사실 조선 내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그 밑바닥에 깔린 정서는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조성운의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수학여행 (한일민족문제연구 제23호 p.65-105> 에 따르면, 일제의 조선 병탄 이래 31만세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의 한 고리로 수학여행을 장려하였으며 1930년대에 이르면 중등학교의 경우 만주와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신문 기사들도 앞 다투어 “매년 조선방면에서 만주방면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횟수는 상당히 많다. 아마 금후도 그 횟수는 늘면 늘지언정 줄지는 않을 것이다”.(동아일보 1931.5.7), “근래 각 학교에서는 일본, 만주 등지의 대도회로 수학여행을 저마다 다투어 떠났다."(조선일보 1931.10.1)라고보도할 정도였다.


                 <1930년 대 대표적인 조선학생의 수학여행지>, 조성운 논문 인용 79쪽

장소

일본

만주

경성

인천

수원

평양

개성

신의주

금강산

경주

횟수

23

14

25

14

11

8

8

7

5

5


특히 수학여행 기간은 당일치기부터 만주 등 먼 거리의 경우는 21일까지 걸렸다. 물론 이러한 수학여행은 경비도 많이 들어 학부모의 부담이 커지자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때 만주와 일본으로의 수학여행을 허용한 조선총독부의 ‘의도’다. 일제강점기 조선 내 중등학생의 수학여행은 한마디로 일본의 팽창하는 제국의 위상과 천황 중심의 국가 정체성을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제국 운영에 협력할 수 있는 식민지 인재 양성이라는 기획된 프로그램 아래서 실시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간도 용정지역의 동흥중학생의 조선 경유 만주 수학여행은 어떤 목적을 담고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용정지역의 수학여행에 대한 연구서를 접하지 못해 이들의 수학여행이 어떠한 의도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식민지 조선과는 거리상 떨어져 있어서 당시 간도지역의 민족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조선의 중등학생들이 만주나 일본지역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실시되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할 수 있다.


당시 간도지역의 조선인 학생들의 교육 문제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동흥중학을 비롯한 민족교육이 이뤄지던 학교를 포함하여 간도지역의 학교를 살펴보면 각기 교육 주최가 다른 5개 종류의 학교가 있었다. 1) 조선총독부직영학교(일본학교) 2) 조선인 사립학교 3) 종교단체사립학교 4) 민족단체경영학교 5) 중국관립학교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2)3)4)를 합해 민족학교라고 부를 수 있으며 간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이상설이 세운 간도 최초의 서전서숙(瑞甸書塾)을 비롯하여, 김약연(金躍淵) 등이 세운 명동학교(明東學校)와 당시 용정에 있던 은진, 광명, 명신여자, 영신, 대성, 동흥 등에서 민족교육이 이뤄졌다.



이번에 관동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80년 전 수학여행 엽서 120점을 한 점 한 점 살피면서 ‘민족교육의 성지’ 간도의 동흥중학 학생들이 수학여행 열차에 몸을 싣고 찾아온 경성(서울) 등지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해졌다. 앨범 말고 수학여행에 대한 수필 한 편이라도 발견되었더라면 이번 엽서전이 더욱 흥미로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엽서전을 통해 일제침략에 이은 또 하나의 비극 한국전쟁으로 지금은 왕래마저 끊어진 북한 지역까지 자유롭게 오갔던 검정 교복의 학생들의 ‘그 때 그 시절’을 눈으로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 장의 엽서가 역사를 품고 있는 ‘80년전 수학여행’ 전시회는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역사의 ‘한 단면’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사색이 가능한 전시회임에 틀림없다. 오래된 일제강점기 건축공간에서 오래된 엽서전을 보는 것은 ‘현대적인 건물에서 현대적인 작품’에 식상한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밝게 해줄 것이다.


<이번 전시 엽서를 수집제공한 류은규 작가는?>

한중수교 직후인 1993년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건너가 우리 동포인 중국 조선족의 생활 모습과 항일독립운동가 후손의 초상을 사진기에 담는 작업을 해왔다.  또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빛바랜 사진을 모아서 정리해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에 역사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에도 몰두해 왔다.

 

현재 중국 하얼빈대학교 예술학원 사진과, 연변대학교 미술학원 사진과,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사진영상예술과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한중일 학생들의 사진교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전시안내>

장소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31번길 38 (관동24-10)

기억과 재생의 전시공간 인천관동갤러리

http://www.gwandong.co.kr/

전화 032-766-8660, 메일 gwandong14@gmail.com

기간 : 2017512~716(기간 중 금토일 10~18시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