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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모두 27행 643자가 새겨진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3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가면 국보 제33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拓境碑)”가 있습니다. 이 진흥왕척경비는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돌아보면서 민심을 살핀 뒤 그 기념으로 세운 비입니다. 비석의 높이는 162, 너비는 174, 두께는 3051입니다. 화강암의 자연석 앞면을 편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새기고, 비면의 둘레에는 윤곽을 선으로 새겼습니다.


 

비는 창녕읍의 목마산성(牧馬山城)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입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지만, 뒷부분은 선명한데 각 행 1827자씩 모두 27643자이지요. 특히 맨 처음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있어 561(진흥왕 22) 곧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진흥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과 같은 우리나라 특유의 한자가 있는 것도 의미가 있으며, 뒷부분에 당시 임금을 따르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신라 중고기(中古期) 곧 법흥왕부터 진덕여왕까지의 관제신분제사회 조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