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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안응권, “새 애국가 필요하다”고 박정희에 건의

작사자 모른다고 “국가와 새 애국가” 개작 청원
[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4]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1963년 안웅권(安雄權)전세계적 강국이 시발되기를 위하여 모순된 애국가부터 개창(改唱)하려 국가(國歌) 제정과 애국가를 개작(改作)····”했다며 자신의 작사 국가와 애국가를 담은 청원서를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발송했다. 196361일자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대통령권한 대행 박정희 의장에게 국가제정 및 애국가선개작공개건의서를 보냈다.

 

이 건의서의 핵심은 1955~56년에 문교부가 애국가 작사자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했지만 안모(安某)와 윤모(尹某) 씨가 유력하다고 했으나 유시무종(有始無終)이어````” 자신이 새롭게 작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경일 등에서 자신이 작사한 국가를 선창(先唱)하고 만세3창 직후 역시 자신이 작사한 애국가를 부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웅권의 현 애국가에 대한 비판과 개작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애국가(愛國歌)가 아니라 슬픈 국가 애국가(哀國歌)이다.

둘째 누가 시문작사(詩文作詞)했는지 모르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

셋째 가사가 비국적(悲國的)이다.

넷째 1961년 들어 여러 개작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섯째 5.16군사혁명 과업 완성과 새 공화국의 번창을 위해 맞지 않다.


 

이상과 같이 다섯 가지 비판과 이유를 들어 새 국가와 애국가를 지었다고 했다. 주관적인 비판으로 맞지 않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도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애국가 작사자 조사에서 작사자가 확정 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안모와 윤모씨를 거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윤치호 작사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결국 윤치호로의 확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매우 치밀한 구상 하에서 국가와 새 애국가를 지어 제시했다. 또한 국가와 애국가를 이원화하여 의식 첫 순서에서는 국가를 부르고, 애국가는 행사 끝에서 만세3창과 함께 부르자고 했다.

 

제시한 선작(選作) 대한민국 국가와 개작 애국가는 다음과 같다.

 

大韓民國 國歌

高明檀生 弘益祖國 天地間에 으뜸일세

東邦文化 자랑하며 倍達民族 全世太陽

煉燭盈成 寶王疆土 富國安民 永樂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사 天壤無窮 强榮되리

 

愛國歌 選()

一 東西南三海 白頭山 天上에 닿도록

하나님이 같이하사 우리나라 永存

東山上에 저 美庵들 언제나 보아도

金剛같은 民族正氣 倍達尊嚴 일세

 

후렴

無窮花 千萬里 다찾아 빛내세

倍達 全世大國 强國繁榮하세

 

높은하날 淸明한데 高曠구름없이

맑은太陽 우리衷心 民族象徵일세

億兆萬代 昌盛토록 廣大자랑하며

樂苦우나 金剛精氣 不變奉國하세

 

상투적인 한문투가 오히려 비속하게 읽힌다. 당시 박정희 혁명정부가 채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원자 안웅권에 대해서는 다른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안익태, 안창호와 같은 순흥 안씨임과 19852월 청원법 위반 사건에 연류 되어 지상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 추정될 뿐이다. 이때의 청원법 위반 사건은 당시 사회문제가 된 상습적 투서로 국정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일제 단속한 것인데, 구속자 9명 중 안웅권은 행정기관 13개소, 국회 7개소 외 35군데에 탄원서를 내기도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 신작 애국가 청원은 애국가 투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