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이순신을 죽이려 한 선조, 목숨을 걸고 상소한 정탁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8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고, 적을 놓아 주고 공격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까지 한 것 또한 엄중한 죄다. 이렇게 죄상이 허다하므로 용서할 수 없으니 법률로 다스려 죽여야 함이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이다.  


선조가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전교(傳敎)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이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부대를 공격하라는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 하였다고 이순신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초죽음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모자라, 이순신을 아예 죽이려고 이런 전교를 내렸습니다.

 

사실 선조의 명령은 잘못된 첩보에 따른 것입니다. 일본이 교묘하게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허위정보를 흘린 것이지요. 당시 대마도 출신으로 요시라(본명 : 가케하시 시치다이후)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중간첩이었습니다. 일본은 요시라에게 가등청정이 모월 모일에 바다를 건너 쳐들어 올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흘리라고 지령을 내립니다. 요시라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이 허위정보를 흘렸고, 이 허위정보는 당연히 선조에게까지 보고됩니다.

 

임진왜란 때 도망가기에 바빴던 선조는 이 정보의 정확성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이순신에게 출정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전장의 상황은 전장의 장수가 제일 잘 아는 것 아닙니까? 이순신은 예리한 정보 분석하에 이 정보가 허위라는 것을 간파하고 출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선조는 이순신이 자기 명령을 어겼다고 죽이려고 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일본이 노린 것입니다.

 

이때 만약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의도대로 사형 당하였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선조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당장 자신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이순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선조는 모든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는 이순신이 혹시나 자기의 왕권 유지에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이순신을 더 죽이려고도 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의병장 김덕령도 이런 선조의 옹졸함에 억울하게 고문대 위에서 목숨을 잃은 것 아닙니까?

 

선조로서는 자신의 왕권 유지가 1차적 목표이고, 여차하면 명나라로 튀면 되는 것이기에 신하들이 백성의 존경을 받고 올라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사실 선조는 전쟁 초기에 의주까지 피난 가서 그대로 압록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서애 유성룡이 선조의 바짓가랑이를 죽어라 하고 붙잡지 않았다면 선조는 압록강을 건넜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조가 서슬 퍼렇게 이순신을 죽이려고 하자, 조정의 대신들은 이순신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선조에게 직언을 하지 못합니다. 자칫 자신도 화를 입을까해서이지요. 그럴 때 우의정을 지낸 지중추부사 정탁(1526~1605)이 목숨을 걸고 상소를 합니다.

 

...이순신은 장수의 재질을 지녔으며 수륙전에 뛰어난 재능을 겸비했습니다. 이러한 인물은 쉽게 얻을 수 없을뿐더러 백성들이 의지하는 바가 무척 크고 적이 매우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죄명이 엄중하고 조금도 용서할 구석이 없다고 판단해 공과 죄를 서로 비교해보지 않고 앞으로 더 큰 공을 세울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또 그간의 사정을 규명하지도 않고 끝내 큰 벌을 내린다면 공 있는 자와 능력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라를 위해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정탁의 상소문 내용입니다. 정탁이 이렇게 목숨 걸고 상소하고, 뒤이어 류성룡, 이원익 등의 대신들도 이순신의 처벌을 반대하자 선조는 내키지는 않지만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의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리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의 직분을 내리고 일본을 막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의 해군은 원균이 다 말아먹어 겨우 12척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순신은 그 12척으로 명랑해전이라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만약 이순신이 명랑해전에서 패전하였다면, 선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이번에는 기필코 이순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만, 이순신 장군으로서는 노량해전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후 언제 선조가 어떤 트집을 잡아 자신을 죽이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갑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최전선의 배에서 해전을 독려하다 적의 총탄에 맞은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순신은 이 해전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갑옷도 입지 않고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으로 나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면 전장의 뒤쪽에서 지휘만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선조의 전교를 읽다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두서없이 뇌까렸습니다. 선조와 이순신. 나라가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빠졌을 때, 무릇 지도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