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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농업가치”가 새 헌법에 들어가야 할 당위성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식물을 기능상으로 구별하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눌 수 있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 물속의 조류(藻類), 그리고 일부 박테리아가 생산자이다. 생산자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초가 된다. 이들은 햇빛과 공기, 그리고 물을 이용하여 모든 생물의 먹이를 생산하고 있다. 소비자는 생산자가 만든 영양 물질을 먹고 사는, 다시 말하면 생산자에 의존하는 생물이다. 코끼리처럼 식물을 먹는 동물을 초식동물이라고 부르고 사자처럼 다른 동물을 먹는 동물을 육식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소비자로서 곡식과 고기를 모두 먹을 수 있는 이른바 잡식동물로 분류된다.

 

지구 생태계는 이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으로 명백한 사실이지만 먼저 생산자가 있고 그 다음에 소비자가 존재한다. 달리 표현하면 식물은 동물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동물은 식물 없으면 살지 못한다. 지구 역사를 보면 식물이 먼저 나타나고 그 후에 동물이 나타났다. 생물량(생물의 질량)으로 계산해 보면 지구 생태계의 99퍼센트는 생산자이고 1퍼센트만이 소비자이다.

 

어느 지역의 생태계를 조사하여 식물과 동물의 생물량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도식화하면 매우 급격히 줄어드는 계단형 피라미드가 그려진다. 이러한 계단형 먹이 피라미드는 안정된 상태로서 지속될 수 있다. 식물의 생물량이 동물의 생물량보다 적은, 거꾸로 된 피라미드는 자연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생산자-소비자 관계에서 보면 매우 불안한 인공생태계이다. 도시 생태계는 피라미드의 바탕이 되는 식물은 거의 없고 식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동물만이 많은 역피라미드를 이룬다.

 

도시 생태계에서는 식물이 없으므로 필요한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한다. 식량의 공급이 끊기면 도시 생태계는 유지 될 수 없다. 이러한 생산자-소비자 관계는 국가를 한 단위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처럼 식량 생산은 적은데 인구가 많은 국가는 식량을 수입해야 유지가 된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율은 사료를 포함하면 25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쟁이라도 나서 외부로부터의 식량 공급이 끊기면 매우 혼란스러운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한반도는 생태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기초가 매우 불안정한 생태계이다.

 

우리나라에서 채소와 곡식 등의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의 부가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값싼 미국의 쌀과 소고기가 수입되고 중국에서 온갖 종류의 농산품이 값싸게 수입되면서 농업은 점점 침체되고 있다. 2016년 현재 농업인구는 250만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다. 또한 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건설하면서 농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6년 통계를 보면 농지 면적은 1644ha로서 국토면적의 16.4%로 줄어들었는데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321m2, 100평을 경작하고 있는 셈이다. 농림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는 많고 국토는 좁은 국가에서 식량 자급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일 것이다. 아무리 기업농을 하고 기계화를 한다 한들 식량을 자급할 수는 없다. 유기농을 강조하면 식량 생산은 더욱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논을 메우고 그 땅에 반도체 공장을 하나 더 만들어 반도체를 수출한 돈으로 쌀과 과일을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라는 잣대만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매우 단순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논농사는 우리가 반만 년 동안 유지해 온 국토 이용 방식이고 또 생활의 일부이자 문화이다. 또한 논은 여러 가지 유익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농업기술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논이 가지고 있는 유익한 역할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논은 홍수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다. 논은 여름철에 물을 가두어 두기 때문에 작은 저수지 역할을 한다. 논이 가둘 수 있는 물의 평균 깊이는 27센티미터로서 전체 논 면적에 대해 계산하면 약 30억 톤에 달한다. 논이 없다면 여름에 홍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목적댐과는 달리 논은 수몰되는 지역이 생기지 않으면서 홍수를 조절할 수 있다.

 

둘째, 논은 지하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강과 하천의 오염으로 인해 지하수가 장래의 수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지하수의 수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논이다. 논에 가두어 둔 물은 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지하수를 보충해준다. 논에서 지하수로 흘러드는 물의 양은 연간 157억 톤이나 된다고 한다. 소양강 다목적댐의 유효 저수량 19억 톤의 8.3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만일 논이 없다면 지하수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환경적으로도 논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논에서 자라는 벼는 광합성을 통하여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 논에서 벼가 배출하는 산소는 연간 1,230만 톤으로서 시중의 산소 가격으로 환산하면 무려 52800억 원이나 된다. 그러므로 논은 식량인 쌀을 생산한다는 1차적 기능 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구 전체로 보면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곡물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브릭스,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경제 성장을 하면서 소득이 늘자 곡물 수요는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모든 나라들에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하여 경작지는 줄고 인구가 증가하고 곡물 수요가 늘게 되자 국제곡물시장에서 곡물가격이 2006년부터 급등하게 되었다. 2007년에 메릴린 린치 회사가 발행한 세계 농업과 에그플레이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는 국제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자 일반 물가가 상승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agflation (agriculture + inflation)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5대 곡물수입국에 속하며 식량 자급율은 OECD 29개 국가 중 26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식량 안보가 매우 취약한 나라이다. 식량 부족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국가 간의 갈등 또는 지역 간의 갈등에서 식량을 무기화하여 곡물 수출을 중단한다면 핵전쟁보다도 더 많은 희생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특히 그동안 식량을 자급하던 중국이 2003년부터 사료 수입이 크게 늘자 농산물 수입국으로 바뀌면서 국제곡물시장은 불안해졌다. 기상 이변으로 미국, 카나다, 호주 등 식량수출국들이 한해 농사를 망쳐 곡물을 수출하지 못하다면 1년 동안 전 세계는 식량위기에 빠져 수억 명이 굶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농업 관련 단체들에서는 우리나라가 이처럼 중요한 농업을 살리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내년으로 예정된 헌법 개정 시에 농민과 농업을 보호하는 법 조항을 넣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4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농민헌법운동본부는 최근 농민 헌법을 확정했는데, 헌법 제34조에 모든 국민은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항을 추가했다. 또한 제121조에 농민헌법의 핵심이 되는 4개항을 신설했는데 주요 내용은 농업의 다원적, 공익적 기능 인정 농민 생존권을 위한 적정 소득과 최저가격 보장 등이다.

 

농민을 대변하는 농협은 최근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헌법에 꼭 반영돼 지속가능한 농업과 국토 균형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농업을 살리자는 법 조항은 헌법 개정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농업을 살리고 농토를 살리고 농민을 살리고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