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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느리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썰렁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거북이가 걸어가다가 벽에 부딪혀 뒤집혀 버렸다. 이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인 지렁이가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의 상황을 물었다. 지렁이의 대답은 자세히 못 봤어요, 너무 빨라서········ .”

 

거북이의 속도는 지렁이에게는 너무 빨라서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치타다. 먹이를 쫓을 때에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려간다고 한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100미터를 958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세웠지만 치타보다는 3배나 느리다. 치타가 빠르기는 하지만 최고 속도로 빨리 달리는 거리는 불과 400~500미터이고, 그 이상 달리면 지쳐서 속도가 느려진다고 한다. 동물의 경우에는 먹이를 쫓거나 적으로부터 도망갈 때 외에는 빨리 달리지 않는다. 소는 느릿느릿 걸으며 되새김질을 하고,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다닐 뿐이다.

 

식물의 경우에는 새겨진 유전 정보에 따라 절기에 맞추어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봄에 가장 먼저 꽃이 피는 것은 매화이고, 이어서 산수유, 진달래 등이 차례로 꽃을 핀다. 가을에 가장 늦게까지 꽃이 피는 것은 국화로 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절기에 맞추어 잎을 내고 꽃을 피고 잎이 떨어지는 순서가 정해져 있으며 모든 식물은 이러한 순서에 따라 정해진 속도로 그들의 생을 산다. 꿀을 찾아 이 꽃 저 꽃으로 이동하는 나비는 자연스럽게 꽃가루받이를 이루게 하며,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져 조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유지된다.

 

그러다가 인간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갑자기 당혹스럽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땅위에서는 기차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고속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 또한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아는 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별로 할 말이 없을 때에는 가장 무난하게 요즘, 바쁘시지요?”라고 물으면 된다. 이에 대한 대답은 거의 예외 없이 , 바빠요.”이다. 나도 실험을 해 보았는데, 모두 바쁘다고 대답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바쁘다고도 말했다. 바쁘게 살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처럼 바빠진 것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나의 생물종으로서 인간은 200만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농사를 시작한 지는 불과 1만 년 전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무려 199만 년 동안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여 한가로운 생활을 유지하여 왔다. 여자는 숲속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채집하고 남자는 살금살금 짐승을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삶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농사와 함께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작물이 성장하는 동안 농부가 부지런히 일을 하면 겨울에는 쉬더라도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충분히 거두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겨울에도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전등이 발명된 다음에는 밤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가 발명되어 느린 마차를 대신하고 기차와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치타보다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정말로 바빠지게 되었다.

 

컴퓨터는 원래 계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계이다. 길고 어려운 계산을 빨리 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가 컴퓨터(computer)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여 컴퓨터는 원고를 쓰는 데에도 이용되고 설계도를 그리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이 생활화된 요즘에는 시장에 가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은행에 가지 않고도 돈을 송금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 잡지의 기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며, 영화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파리에 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처럼 시장, 은행, 도서관, 영화관, 박물관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따라서 사람들은 바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결 같이 인터넷이 등장하고는 더 바빠졌다고 한다.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원 그림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된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왼쪽 원은 과거 농경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의 양을 나타내고 오른쪽 원은 현재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필요한 지식의 양을 나타낸다. 위 그림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원의 둘레가 길어졌다는 점이다. 원의 둘레는 미지의 정보와의 경계선이다. 우리가 지식을 늘릴수록 정보와의 경계선은 길어지고 새로이 찾아야 할 미지의 정보는 더 많아지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새로운 정보를 빨리 수집하여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회사든 연구소든 학교든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정보를 빨리 수집하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여 지식으로 만든다. 그러나 지식이 많아질수록 원은 커지고 따라서 원의 둘레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인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정보를 수집하여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인터넷은 이러한 경쟁의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하였다. 세계화는 달리 말하면 경쟁의 세계화를 의미하며 사람들에게 바쁘게 살기를 요구한다.

 

자연 생태계에서 빠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서두르거나 속도를 위반하면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적정 속도를 지키면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진 독특한 동물로서 인체에 새겨진 생체시계를 무시하면서 밤새워 일을 하고 필요한 수면 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한 사람이 밤잠 안 자고 바쁘게 일해서 성공했다는 것은 미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밤잠 못 자고 일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문제가 있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듯이, 우리가 행복하려면 야근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세계 으뜸인데 40대 여자에 비해서도 3배나 높다고 한다. 40대 남자들의 사망 원인은 과로에 의한 돌연사가 많다. 40대 남자는 한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 직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가려면 문자 그대로 죽도록일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사회를 보면 모든 사람이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점점 바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까지 바빠질 것인가? 자동차가 달릴 때에 적정 속도라는 것이 있다. 자동차가 적정 속도를 넘으면 대기 오염 물질도 많이 나오고 사고의 위험도 높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적정 속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적정 속도를 넘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병이 나고, 심하면 과로사하게 되고, 가족이 피해를 입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어떻게 하면 덜 바쁘게 살 수 있을까? 이처럼 현대인을 바쁘게 만드는 것은 현대 문명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우리가 추구하는 현대의 가치관, 곧 빠른 것이 좋다는 가치관에서 느리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 최초의 환경주의자인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계절이 천천히 변화하듯 제때에 자기 할 일을 천천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빠르게 살다 보면 부작용이 나게 마련이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삶이 아니다. 빠른 것은 친환경이 아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소유에 관한 욕심을 줄이면 바쁘게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소유에 관한 욕망을 줄이면 바쁘게 살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법정스님이야말로 진정한 환경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