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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화성 발안 3.1 만세항쟁 이끈 이정근의사 추모제 열려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터졌구나 터졌구나 / 독립성이 터졌구나

   15년을 참고참다 / 이제서야 터졌구나

   피도 대한 뼈도 대한 / 살아 대한 죽어 대한

   잊지마라 잊지마라 (2절 줄임) 탄운 이정근 의사 지음 ‘3.1독립가’ -

 

경기 화성 발안 3·1 독립만세 항쟁의 선구자인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 순국 99주기 추모제가 어제(31) 11, 향남읍 소재 탄운 선생 창의탑 (향남읍 삼천병마로 283-6번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어제 추모제에는 광복회 경기도지회 안소헌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유지, 탄운장학금 수여자와 학부모 등 150여명이 모여 탄운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제는 탄운 선생에게 올리는 추모제례로 초헌례(유족대표 이호원), 아헌례(광복회지회장 안소헌), 종헌례(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회장 김겸)의 예를 갖춘 제례를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이어 헌화, 분향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1919331일 발안 장날을 기해 1천여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다 현장에서 일헌병에 총검에 의해 순국의 길을 걸은 탄운 이정근 의사의 거사는 전국적으로 펼쳐진 우리 겨레의 3·1독립만세 항쟁에 불씨를 당긴 위대한 일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는 주제의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의 추모사가 있었다.

 

 

 


어 올해로 제15회를 맞는 탄운장학금 수여식을 끝으로 이날 추모제는 막을 내렸다. 15회 탄운장학금을 받은 채승혁 (서울대 재료공학과 1학년) 군은 “이정근 의사를 기리는 장학금을 받았으니 의사의 뜻을 새기고 에너지관련 분야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날로 극심해져가는 지구 환경을 살리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탄운 이정근의사는 누구인가?】

  탄운 이정근 의사는 17세에 사서오경을 섭렵할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33세 때는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지켜보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팔탄, 우정, 장안, 정남, 봉담, 남양 등 7개 면을 중심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인재육성 교육에 전념했다.

 

당시 탄운 이정근 의사는 당시 전국적으로 불리던 독립가를 손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왜왕(倭王) 3이라는 구호를 친히 만들어 유포했다. 이는 야만적인 침략자 일제가 천벌을 받아 3년이 못가서 채 망할 것이란 뜻이었다. 탄운 선생은 1919331일 화성군 향남면 발안 장날 일어난 독립만세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다가 현장에서 일헌병의 총검에 56살로 순국의 길을 걸었다.

 

어제 추모제가 열린 창의탑은 선생의 강인한 독립정신과 온후한 인품을 기리고자 1971331일 선생이 순국한지 52년 되는 해에 한글학자 한갑수, 김석원 장군, 최덕신 천도교령, 도지사, 국회의원과 지역유지 등 33인이 발기하여 건립했다.

 

 


 


15회를 맞이하는 탄운장학회는 어떤 곳?】

탄운 이정근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20043월 설립한 탄운장학회는 올해로 제15회 째 장학생을 배출하였다. 20043()탄운이정근기념사업회(회장 김겸)는 화성시 6개 읍면(향남, 팔탄, 양감, 우정, 장안, 봉담)에서 대학입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었으며 2014년부터는 관내 4개 인문고교에 탄운장학생을 의뢰하여 장학생을 선발하였다.

 

 

올해는 향남고 3학년 양주은을 비롯하여 고등학생 4명과 서울대 재료공학과 1학년 채승혁을 비롯한 9명의 대학생을 합하여 모두 13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장학회 설립 이래 수혜자는 모두 16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