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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선을 토설한다면 침몰하였노라고 하라

소설 "이순신의 제국 2" 의리의 장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준사는 포작선을 끌어왔던 어부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럼, 나리께옵서는?”

모두들 일관되게 진술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강요로 바다를 살피러 나왔노라고 말하라. 너희들은 단순한 어부들이다. 혹여 고문에 못 이겨서 귀선을 토설하게 된다면 본 대로 자백하라. 침몰하였노라고. 난 그들과 끝까지 대항하다가 죽을 것이다.”

어부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들이었다.

, 어서 다른 배로 올라들 가거라. 너희들은 항복하게 되면 일반 어부들이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격군으로 이용하겠지. 일본 군선의 포로가 되어 일본 놈들의 노를 젓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싫다면 나와 남아도 좋다. 하지만 반드시 죽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어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다른 포작선으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어부가 준사를 지그시 바라다보았다.

내게 할 말이 있는가?”

늙은 어부는 바다에서 온갖 풍상을 겪어온 듯 주름살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깊이 패여 있었고 안색 역시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항복을 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도 있고, 목숨이 연장되면 탈출의 기회도 생기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나리, 소생은 두 번씩이나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노를 저을 수 있는 기회 때문에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기회를 쉽게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준사는 늙은 어부의 충고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죽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에게 내린 것일까? 그것은 순전히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었던가. 무릇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다. 죽음을 작정했다면 적어도 자신의 모든  것들과 타협해야 한다. 뜨거운 가슴에게도 물어봐야 하며 열정적인 정신에게도 동의를 구해야 하며 자신의 건강한 육체와도 타협해야 한다. 준사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때 늙은 어부는 다른 포작선으로 옮겨 탔다. 홀로 남은 준사는 늙은 어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단신으로 배를 젓기 시작했다.


적어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치스카의 일본 관선은 삽시간에 어부들이 모여 있는 포작선으로 다가왔다. 10여 명의 어부들이 모두 손을 상투 위로 번쩍 들고 있었다. 다만 포작선 한 대는 열심히 도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로들은 끌어 올려라.”

하치스카의 명령에 따라서 일본 관선에서는 어부들이 타고 있는 포작선으로 긴 사다리를 내렸다.

도주하는 놈은 어찌 합니까?”

“사는 것이 귀찮은 놈 아니겠느냐? 포격하라.”

화포 장전!”


일본 수병들이 즉각 채비를 하였다. 이때 저만치 구루시마의 대장선에서 붉은 색 적기가 선박의 상판에 올린 누각 꼭대기에 매달려지고 있었다. 적색의 깃발이 바닷바람에 몸부림치며 아우성을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하치스카의 전령을 담당하는 부관이 그 신호를 목격하였다.

장군, 대장선에서 중지 명령입니다. 모든 상황을 대기하라는 신호입니다.”

포작선에서 어부들을 끌어 올리는 일도, 준사가 몰고 달아나는 포작선에 화포를 발사하는 일도 일단 멈춤이었다.

동작 그만! 일체 중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