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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09년 오늘, 일제와 싸운 베델 죽은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0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 이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영국언론인이며, <대한매일신보> 사장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 이름 배설-裵說)의 마지막 유언으로 1909년 오늘(5월 1일)은 그 베델이 죽음에 이른 날입니다. 의학적 사인으로는 심장병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재판과 상하이에서 감옥에 갇혔던 일, 독립운동가 양기탁 지사와 관련하여 조사받은 일 따위로 건강을 크게 해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베델이 죽자 그의 뜻을 영원히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는데 미국 하와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등 세계 곳곳에서 1환, 2환 또는 몇 십전씩을 내놓기 시작하여 죽은 지 1년 뒤인 1910년 6월 비석을 세웠지요. 이 비석에는 장지연이 “아! 여기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 공(公)의 묘가 있도다. 그는 열혈을 뿜고 주먹을 휘둘러서 이천만 민중의 의기를 고무하며 목숨과 운명을 걸어놓고 싸우기를 여섯 해. 마침내 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곧 공(公)의 공다운 점이요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공을 위하여 비를 세우는 까닭이로다.”라고 썼습니다.

 

 

베델은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데일리메일(Daily Mail)> 특파원으로 한국에 와, 그해 7월 양기탁(梁起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습니다. 이후 <대한매일신보>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고종의 친서를 <대한매일신보>와 <런던 트리뷴>지에 게재하는 등 나라 안팎에 일본의 침략행위를 폭로하는 항일언론 활동을 벌이며 배일사상을 드높였지요. 이 때문에 일제는 그를 추방하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했습니다. 베델은 한국의 독립과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운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