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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이문세  <광화문 연가>, 그의 창법은 화룡점정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14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추억을 주우며 걷는다.

이 길엔 그동안 떨어진 낙엽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자국을 남겼으며 저 마다 이런 저런 기억들을 간직한 채

사라져 갔으리라.

나 또한 그 무리 속의 하나로 이 길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으며 곳곳에 추억 이라는 기억들을 심어두었다.

 

“저기가 국제극장이 있던 자리지.

저 옆은 코메디언 장고웅의 레코드점이 있었고,

여기는 현대건설 사옥이 있던 자리,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미리내 분식.
서울 시내 여고생 치고 안 가본 학생이 없는 명소였지.”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길 때 마다
기억의 비늘들이 반짝이며 일어난다.

추억이란 이런 것인가.

이토록 아련히 아려오는 것인가.


1980년대. 이 땅이 송두리째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던 때.
그 때 나는 무엇에 그리도 목이 말랐을까.

일과가 끝나면 명동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무교동으로

바람난 수캐처럼 무턱대고 쏘다녔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타는 바닷물처럼 아무리 밤거리를

헤매고 다녀도 그 막연한 목마름은 가시질 않았다.

그 방황의 끝은 구도(求道)라는 거창한 명분을 걸고 이 거리를,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었다.


아마 그 때 나는 세상의 바닷물을 다 마시려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달걀 석 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구도자가 아닌 필부의 신분으로

아내와 이 거리에 다시 섰다.

 

"이곳이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으로 바뀌었지만 전신은 시민회관 이에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우리나라의 굵직한 공연은 모두 이곳에서 치러졌지.

<플레이보이 컵 쟁탈 그룹 싸운드 경연대회>라든가

<고고 갈라 파티 쑈>라든가, 각 방송사의 연말 행사라든가...

그러다 보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연도 참 많았지.


남진과 나훈아 두 숙명적 라이벌의 대결이 주로 시민회관에서 이루어 졌고,

소주병에 난자당해 100바늘이 넘게 꿰맨 몸으로

얼굴과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무대에 올랐던 김추자는 이곳의 단골이었어요.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1972년에 발생한 대화재 사건이지.
문화방송에서 주최한 연말특집 <가요 청백전>

공연도중에 불이 나서 쉰 한 명이 사망하고 일흔 여섯이 다친 끔찍한 사고였어요.
바로 전 해에 있었던 대연각 호텔 화재, 두 해 뒤에 일어나는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70년대 3대 화재로 꼽히지.
이게 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일이에요.“

 

강원도 산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 아내는 처음 듣는 얘기에

눈을 반짝이며 깍지 낀 손가락에 힘을 준다.

“저쪽 모퉁이를 돌아서 가면 내자호텔이 있었고,

그리 쭉 가면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정동교회.
아직도 있지요. 구한말에 지어진 우리나라에 최초의 현대식 교회 건물 이지요.“

 

순례의 발걸음은 경복궁 담장을 따라 삼청동으로 이어졌다가
가회동, 팔판동, 사간동 뒷길을 따라 내려온다.
정독도서관 자리, 미팔군 병원자리, 풍문여고 앞을 지나 인사동으로...

그래, 삶이란  이렇게 발길 따라 가고 오는 것.
언젠가 나도 이 땅에 없는 사람이 될 날이 오리라.
오늘 우리의 발자국이 남은 이 길을 아내 혼자 걸을 날도 오리라.
옛 기억의 비늘을 주우며!


<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가

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그냥 재능 있는 음악가로만 알았다.
노래를 꽤 잘 만든다고만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랬다. 이 노래를 귀 기울여 듣기 전 까지는.
이영훈 !
그가 이렇게 소름 돋는 천재였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 심장은 왜 있는가?
이영훈의 음악을 들으면 심장의 기능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다.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망을 표현해 내는

그의 빼어난 재주에 찬탄을 아끼기가 어렵다.
편곡 또한 작사 작곡에 견주어 뒤질 생각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도입부의 피아노 연주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표현했고,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은 듣는 이를 추억으로 인도한다.
배경에 은은하게 깔리는 건반 음은 다음 마디를 기대하게 해주며,

첼로와 함께 미래와 소망을, 대미를 장식하는 플루트는 희망을 연주한다.

 

유명 밴드 출신답게 편곡자 김명곤의 감각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노래의 화룡점정은 이문세의 창법에 있다.

의미 없이 툭툭 던지는 듯한 그의 창법엔 여백미가 있다.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그와 이영훈은 백아절현*의 관계였을 것이다.

 

<광화문 연가>가 수록된 이문세 제5집은

서울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9월 15일에 발매되어 온 나라를 뒤 덮었다.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세션*으로 참여한 걸작으로

선 주문이 수십만 장에 이르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아절현*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
세션(session)* : 음반 녹음을 위해 임시로 모은 연주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