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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행당동 아기씨당 (3) - 무신도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25]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서울시 성동구 행당1동 128∼901번지에 있는 아기씨당은 2001년 성동구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되었고, 당굿은 2005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아기씨당의 규모와 형태는 80여 평 터 위에 기와로 된 6평의 2칸 맞배지붕 목조 한옥이다. 당 좌측으로 당주 살림집 한 채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 방 한 칸을 당주의 개인 전안(신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기씨당은 190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현재의 왕십리역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용산에서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국철이 놓이면서 당 터에 역이 들어서자 현재의 성동우체국 뒤편으로 옮겨졌었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44년 성동우체국 뒤편 일대에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오늘날의 위치로 재차 이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당을 옮겨는 왔지만 재정적 여건이 어려워 수습해온 건축물을 그대로 보관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 3년만인 1947년이 되어서 마을 유지들이 공동으로 추렴하여 당을 현재와 같이 조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68년에 당을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채색도 하게 된 것이다(서울특별시, 《서울민속대관 I. 민간신앙편》1990 343-345).

 

 

 

아기씨당 내부에 모셔진 무신도는 좌제장, 우제장, 삼불제석, 아기씨, 산신, 조왕, 부군 등 모두 7점이다. 이들 가운데 아기씨, 산신, 삼불제석, 좌제장, 우제장 5점은 본래부터 이 당에 봉안되었던 것들이지만 조왕과 부군 두 점은 광진구 자마장 마을에서 옮겨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셔진 조왕은 태상노군이다. 김옥렴 당주는 이 무신도를 조왕이라고 하였지만 1990년에 이루어진 현장조사에서는 태상노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서울특별시,《서울민속대관 I. 민간신앙편》1990 347-348쪽).

 

당시 구술조사에 응했던 제보자는 김옥렴이었다. 필자가 이 내용을 김옥렴에게 물었더니, 이 무신도의 주인공은 원래 태상노군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도교의 높은 신을 이와 같은 초라한 마을신당에 모셔지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하자 그때부터 조왕으로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김옥렴 담 2005년 및 2015년).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기인 B.C. 5세기 ~ B.C. 4세기 전반의 실존 인물이며 본명이 이이(李耳)이다. 흔히 노자(老子)라고 부르며 도교 최고신인 삼청(三淸) 가운데 한 분으로써 도덕천존(道德天尊)으로 받들어지는데 도덕천존(道德天尊), 이백양(李伯陽), 노자도군(老子道君) 등의 별칭이 있다. 태상노군(노자)은 고대 중국 대사상가로써 그의 후계자 장자(莊子)와 함께 중국 전통 철학 사상과 종교의 개조(開祖)로도 추앙된다. 그는 당시 황제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국인의 사상적 기반이 된 도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 《도덕경(道德經)》을 남겼다.

 

 

아기씨당 당주 신당의 무신도

 

아기씨당 옆으로 딸린 김옥렴 당주 살림채의 개인 전안에 모셔진 15점 무신도 칠성, 서산대사, 석가모니, 전안부인, 최영장군, 관운장, 별상, 대신할머니, 오방신장, 넋대신, 산신, 용궁부인, 일월성신, 천신할아버지, 삼불제석도 자마장 마을에서 모셔온 것이다.

 

이들 무신도가 자마장으로부터 오게 된 것은 김옥렴의 친할머니 고송자(1869∼1957, 일명 왕십리 족집게방) 만신이 광진구 자마장 마을에 살았던 그녀의 신어머니 대사집으로 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장안평(長安坪)과 더불어 관마(官馬, 관청에 속해 있던 말)의 목마장(말을 먹여 기르는 곳)이었고 군대 열무장(閱武場, 임금이 군대를 사열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경기도 과천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경마장이 있었던 곳이다.

 

자마장은 조선시대 국립목장인 사복시(司僕寺) 살곶이목장이 있었던 곳으로써 이곳에서 암말을 길렀기에 암말 자(雌)자를 써서 자마장(雌馬塲)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살곶이목장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필요한 말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었던 양마장을 일컫는다.

 

이곳 살곶이벌은 한강과 중량천이 합류하여 생긴 삼각주에 모래와 흙이 쌓여서 형성된 퇴적 평야로 된 곳이다. 물과 풀이 풍성하여 조선시대에 나라의 말을 놓아기르는 목장으로 사용되었다. 《목장지도(牧場地圖)》 가운데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보물 제1595호), <시복시살곶이목장지도(司僕寺箭串牧場圖)>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95호)에 그 목장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그림들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 이후 이곳은 자마장리(雌馬場里)로 불리었다가 1936년 자양동이라고 불렸다. 자마장 신당은 자양1동 주민센터 옆 자마장 공원 부근에 있었다. 이곳은 과거 웃말과 아랫말이 나뉘어져 있었고, 기와 4평정도 규모의 마을 신당이 있어서 최영장군을 비롯한 호상(虎象), 용상(龍象) 등이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매년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동굿을 치렀는데 1940년대 무렵 당이 없어지고 말았다.

 

자마당 신당은 서울지역 마을당 조사년도인 1969년 당시로 부터 30여 년 전에 없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마을제당》 1995 31쪽). 당이 헐리는 과정에서 당집 내부에 모셔졌었던 조왕과 부군 등의 무신도들을 아양방집으로 모셔갔다(김옥렴 대담 2005년과 2015년). 원래 대사집은 이 무신도들을 자신의 신어머니 아양방집 만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고송자 만신은 이 무신도들을 행당동으로 모셔온 뒤, 며느리 김묘분(1919∼1988년, 김옥렴의 친정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김옥렴 친정 어머니 김묘분은 광희동에서 13살에 손뼉을 치고 무당이 되었고, 16살에 시집을 갔다. 당시 서울굿을 하는 만신세계에서는 서쪽과 동쪽에 이쁜이가 각각 있었는데 김묘분은 동쪽 이쁜이었다고 한다. 그후 김묘분 만신은 현재의 당주 김옥렴에게 물려주었다. 김옥렴은 김묘분의 8남매 중 장녀이며 고송자의 친손녀이다. 김옥렴은 많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만신이 되었다, 세 번의 결혼에서 둘째 남편 오씨 사이에 딸 둘을 낳았고 큰딸 오소연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만신의 길을 걷고 있다.

 

본 글을 정리해보면, 행당동 아기씨당 무신도 22점(애기씨당 당집 무신도 7점, 당주 신당 무신도 15점) 가운데 행당동 지역의 것은 당집에 있는 애기씨, 산신, 삼불제석, 좌제장, 우제장 등 5점이다. 나머지 조왕과 부군 2점 그리고 당주 개인 신당에 모셔져 있는 15점의 무신도는 모두 광진구 자마장 마을에서 옮겨온 것으로써, 애초 행당동 아기씨당과는 무관한 것이다.

 

 

현재 ‘조왕’으로 호칭되고 있는 무신도 주인공은 도안상으로나 1990년 조사 기록으로나 ‘태상노군’이 맞다. 하지만 현재는 그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어 혼돈스럽다. 당주 김옥렴 개인 신당에 모셔져 있는 무신도 15점은 유지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오랫동안 폐쇄된 공간에서 촛불과 향불에 그슬려 원래 형체를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다.

 

한편, 행당동 아기씨당은 인근의 양지동 아씨당 그리고 왕십리 수풀당과 더불어 당 내력에 대한 옛이야기가 당주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일대 세 곳의 마을당 가운데 가장 큰집이 행당동 아기씨당이고 둘째집이 양지당이었으며 막내집이 수풀당이었다. 큰집과 둘째 집에는 아씨와 부인마마가 각각 모셔져 있었고 마지막 막내집 수풀당에는 부인마마 세분이 모셔져 있다.

 

다만, 양지동 아기씨당 내부에 아씨를 비롯하여 열서너 분의 신령을 모셨는데 1970년대 도심개발과 함께 당이 없어지면서 무신도들은 누군가가 모셔갔었다고 한다(김옥렴 대담 2015년). 수풀당은 당집 그리고 그 내부에 아직 세 분의 부인마마 무신도가 남아있다. 그러나 마을굿은 오래 전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