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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 광복절, 여운형 건국준비위원회 탄생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8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 제73돌입니다. 그런데 1945년 이날은 민족지도자 여운형 선생이 일본의 항복과 동시에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 이하 ‘건준’)를 발족시킨 날이기도 합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8월 15일부터 여운형, 안재홍, 조만식 등을 주축으로 일본으로부터 치안권 등 행정권을 인수받기 위하여 만든 조직입니다.

 

 

건준은 8월 18일에 제1차 위원회를 개최, 건준 명의로 ‘3천만 동포에게 지령’을 발표하였고 8월 25일 선언과 강령을 채택했지요. 이때 채택한 건준의 강령을 보면 ①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② 전민족의 정치적ㆍ사회적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③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함 등의 3가지였습니다. 또 선언에서는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의해 국가건설의 준비기관과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의 집결체로서 결성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건준은 각 지역 지부를 통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상태에서 반민주적 세력을 제외한 민주세력의 통일전선적인 정권 예비기관이었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운형은 극우세력으로부터 두 번의 테러를 당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환국을 기다리던 송진우 등은 물론 미군정과 이승만이 이를 부정함으로써 자연적으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여운형 선생은 김규식ㆍ김창숙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십여 차례 테러를 당하였고, 1947년 7월 19일 극우테러리스트 한지근에게 저격을 당해 숨졌습니다. 나라에서는 2008년 여운형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