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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8살 율곡이 시를 지었다는 화석정(花石亭)에 서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칠중성에서 후퇴하여 오면서 율곡이 오르곤 하였다는 화석정에 들렀습니다. 차가 기어가 들어가는 것이 영 빡빡한 것이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화석정을 빠뜨리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5년 전에 파주의 율곡 유적지를 돌면서 화석정만 빠뜨렸기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면 또 언제 보러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을 돌아 오르니, 임진강가의 언덕 위에 정자 하나가 서 있습니다. 율곡은 저 정자 위에서 바로 앞의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편안한 휴식의 시간도 가졌을 것이고, 또 책을 보며 학문의 시간도 가졌었겠지요. 저도 율곡의 그러한 느낌을 가져보려는데, 그 때와 달라진 환경이 그런 느낌을 갖는 시간을 방해합니다.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은 그대로이지만, 강변에는 4차선의 37번 국도 위로 연신 차들이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자 옆에는 선조의 피난길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율곡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하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들기름에 젖은 걸레로 정자 마루와 기둥을 닦으라고 하였습니다. 율곡의 예견대로 1592년 임진왜란은 일어나고야 말았고, 율곡의 경고를 무시하던 선조는 허겁지겁 북으로 피난길을 떠납니다. 4월 그믐밤 선조가 이곳 임진강 나루터에 이르렀을 때 폭풍우까지 몰아쳐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원래 겁이 많던 선조는 공황 상태에 빠져 신하들을 닦달하였겠지요. 이 때 선조를 호종하던 이항복이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열어보라며 율곡이 남겼던 봉서(封書)를 생각해냅니다. 개봉한 봉서에 쓰인 글은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 평소 율곡이 들기름에 젖은 걸레로 닦고 또 닦았으니, 화석정은 얼마나 잘 타겠습니까? 그리하여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화석정의 불 덕분에 선조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이 일화는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조가 마침 화석정 근처에서 강을 건넜고 또 당시 실제로 이 근처 집을 태워 불을 밝혔기에, 율곡이 화석정에 기름칠을 하여 선조의 피난길을 도왔을 것이라는 얘기가 그럴 듯하게 퍼진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예견하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이 선조의 피난길도 돕지 않았겠냐는 백성들의 믿음이 이런 얘기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당시 불에 태운 것은 목재창고였고, 창고에 불을 지른 것도 불을 밝히는 것도 밝히는 것이지만, 추격하는 왜군이 창고에 보관하던 목재로 배를 급조하여 강을 건널까봐 목재창고를 불태웠다는 것입니다. 사실 율곡이 10만 양병성을 주장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조는 왜군이 물러나면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올 때도 여기서 강을 건넜는데, 선조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이때는 강변에 제물을 차려놓고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랬답니다. 그러면서 전쟁통에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을 생각하며 통곡하였고요. 그리고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면서, 강 이름을 신지강(神智江)에서 임진강(臨津江)으로 바꿨답니다. 강 이름이 특이하게 나루터에 도달했다는 뜻의 ‘臨津江’강이니 그럴 듯한 얘기네요. 정자 옆에는 율곡이 8살에 지었다는 그 유명한 화석정 시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샘솟는 시상(詩想)은 끝이 없도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더욱 붉도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해놓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여 어디로 날아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이게 정말 8살짜리가 지은 시일까요? 아무리 옛 선인들의 정신연령이 높았다지만, 어떻게 8살짜리가 이런 수준 높은 시를 지을 수 있었을는지. 흐음~ 율곡이 과거에 9번이나 장원급제한(九度壯元) 천재였기에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었던 모양이네요.

 

저는 사방을 휘휘 돌아보며 어디쯤 밤나무 숲이 있을까 찾아봅니다. 왜 밤나무숲을 찾느냐고요? 율곡 이이가 밤나무가 많은 자기 동네를 생각하며 율곡(栗谷)이라는 호를 지었기 때문이지요. 이 근처를 답사하면 어딘가에서 율곡이 보았을 밤나무숲을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화석정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쌍벽으로 추앙받는 율곡, 16살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루고 인생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답을 불교에서 찾기 위해 1년 동안 금강산에서 헤매다 돌아온 율곡, 자기를 잊지 못하고 먼 길을 따라온 기생 유지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밤새 얘기를 나누면서도 끝내 유지를 품에 안지 않고 돌려보냈던 율곡. 그 동안 다양한 율곡의 얼굴을 만나보았지만, 오늘은 8살 천재 아동 율곡을 화석정에서 보고 돌아갑니다. 다시금 율곡의 시를 읊어봅니다. “塞鴻何處去라” 변방의 기러기여 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