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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파주 장릉서 병자호란을 자초한 인조를 보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화석정을 떠나 자유로로 올라타면서 ‘이젠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멀리 통일전망대가 보이면서 딴 생각을 가진 녀석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애초 너는 돌아가면서 파주 장릉도 보고 갈 생각이 아니었느냐? 그까짓 차 걱정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버린단 말이냐? 성동나들목에서 나가면 불과 6~7분밖에 안 걸리는데?” 햐아~ 이거 어쩐다? 결국 흔들리던 내 마음은 성동나들목이 보이자 끝내 제 손목으로 하여금 성동나들목으로 핸들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장릉(長陵)에 도착하였습니다. 참! ‘장릉이 누구 무덤이지?’라고 하실 분이 있겠군요. 장릉은 인조와 인조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 한 씨의 합장릉입니다. 한자는 틀리지만 김포에도 장릉(章陵)이 있는데, 이는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인종의 어머니인 인헌왕후 구씨의 쌍릉입니다. 그런데 인조의 아버지가 원종이라면 인조 아버지도 임금이었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선조의 5번째 아들이라 대군(大君)으로는 불리었지만 죽을 때(1619)까지도 임금으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인조가 쿠데타(1623)에 성공하니까, 죽은 자기 아버지를 추존왕으로 모신 것이고, 따라서 원종의 무덤도 릉(陵)으로 승격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장릉(莊陵)이 있는데, 이 장릉은 멀리 강원도 영월에 있습니다. 왜 임금의 무덤이 이렇게 멀리 영월에 있지요? 굳이 말 안 해도 다 아시겠지만, 단종의 무덤입니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된 후, 끝내 사약 먹고 죽지 않습니까? 그래도 한 나라의 임금이었는데, 세조는 조카 단종의 시신도 수습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호장 엄홍도가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암장하지 않았으면 단종의 시신은 찾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 후 단종이 복권되면서 암장한 무덤을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왕릉으로 다시 만들었으니, 바로 장릉(莊陵)입니다.

 

차에서 내려 장릉으로 다가가니, 한창 매표소, 화장실 등의 시설을 만들고 있네요. 9월 중으로 유료로 전환한다는군요. 그러니까 그 동안은 아무나 장릉까지 접근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시설을 만들면서 9월부터는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군요. 장릉으로 접근하는데, 천둥, 번개 소리가 은은하게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니 먼 데 하늘이 꺼멓습니다. 저 먹구름 밑에는 지금 한창 소나기가 오겠군요.

 

 

 

 

저는 저 비구름이 이리로 몰려오기 전에 빨리 참배를 마치려고 발걸음을 빨리 합니다. 얼마 안 있어 어느 왕릉이나 빠져서는 아니 될 홍살문이 나타납니다. 홍살문은 왕릉으로 접근하는 나쁜 영을 물리친다고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홍살문의 가운데 윗부분은 삼지창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접근하는 잡귀는 삼지창으로 찌르겠다는 것이겠지요.

 

장릉 앞에서 잠시 참배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인조에 대해서는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광해군은 당시 국제정세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떠오르는 해 청나라와 지는 해 명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인조는 청나라는 오랑캐 국가라고 깔보며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대명외교에만 치우치다가 병자호란이라는 화를 자초하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청나라가 침입해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명약관화한 데도, 명분에만 집착하다가 화를 당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도 채 안 되어 또다시 병란(兵亂)이 일어났으니, 백성들의 삶은 오죽했겠습니까? 그 당시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록을 읽다보면 눈물로 눈이 흐려지고, 분노로 주먹이 부르르 떨립니다.

 

또한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신임을 얻으니까, 자칫 왕위를 빼앗길 줄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 고려 때 원나라가 충렬왕을 내쫓고 아들을 충선왕으로 앉힌 전례가 있습니다 -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를 박대하다가 두 달 만에 갑자기 죽게 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소현세자는 누군가에 의해 약물이 투여되어 죽은 것 같은데, 인조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덮어버립니다.

 

 

그렇기에 그 배후에 인조가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인조를 보면 무릇 한 나라의 지도자는 어찌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오늘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인조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랍니다.

 

이제 정말로 집을 향하여 달립니다. 차가 채 고양시로 들어서기도 전에 차창에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변합니다. 윈도우 브러시를 3단에 놓고 차창을 마구 닦아도 앞이 잘 안 보입니다.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걸음을 합니다. 후유~ 이 비구름이 제가 장릉을 참배하고 있을 때 도착했으면 저는 완전히 비에 빠진 생쥐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서울로 들어서니 도로는 들어오는 차들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여전히 먼지를 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경순왕릉에서 호로고로성, 칠중성으로, 또 화석정, 파주 장릉으로... 오늘 된더위로 산행을 포기하고 모처럼 차를 몰고 경기 서북쪽 지역을 돌았더니 얻는 것이 많습니다.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되짚어보면서 저는 한강을 따라 집으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