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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우리네 인생은 푸른 바다의 좁쌀 한 알

[서한범 교수의 우리 음악 이야기 38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 좌창(坐唱), 초한가에서 장자방이 옥통소를 불어 전쟁에 참여한 8,000 여 군사를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와 적벽부에 나오는 통소 이야기를 하면서 음(音)이란 사람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대 중국의 아악기 중에서 부는 악기라면 훈(塤), 지(篪), 약(籥), 적(篴), 소(簫) 등이 중심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음량이 작은 것이 특징이란 점과, 통소는 주로 궁중음악에 쓰여 왔으나 현재는 시나위, 산조, 사자놀음 등 민간음악에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흔히 부는 악기들을 퉁소요, 피리라고 마구 불러대는데, 이는 잘못된 관습이며 서양의 금관이나 목관악기들을 모두 나팔이나 플륫으로 부르지 않는 예와 비교 된다고 하였다. 전쟁도 사람의 마음이 시켜서 하고, 음악도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악(惡)한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음악이오, 악기란 점에서 음악의 존재, 그 가치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앞에서 통소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적벽부를 소개하면서 그 속에 나오는 통소 잘 부는 손님과 소동파의 대화 일부분을 소개하였는바, 적벽부는 내용도 의미가 깊고 또한 명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국악의 장르 가운데 송서(誦書)로 감상할 수 있다. 송서란 간단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 소리이다.

 

책을 읽되, 고저를 살리고, 리듬의 단위로 문장을 적절히 조절하며 음악의 주요 요소인 시김새와 잔가락과, 사설에 맞는 감정을 긴 호흡으로 표현하는, 마치 느린 노래를 부르듯 책을 읽는 장르를 송서라고 한다. 서도지방의 송서로는 추풍감별곡이 대표적이다.

 

 

벽파 이창배의 《가창대계》에는 <전적벽부(前赤壁賦)>를 포함하여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삼설기<三說記>, <후적벽부>, <어부사>, <춘야연도리원 서(春夜宴桃李園 序)> 등 6곡을 송서의 장르에 포함시켜 놓고 있는데, 경기소리 쪽에서는 삼설기와 적벽부를 많이 부르고, 서도소리쪽에서는 추풍감별곡을 자주 부르는 편이다.

 

<전적벽부>를 송서로 부른다고 하면, 우선 그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달이 뜨고, 또한 강이 흘러가는 대자연속에 유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인생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가를 알게 한다.

 

앞에서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손님 한 사람이 통소를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소개하였다. 그 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가는데, 원망하듯, 사모하듯, 울며 하소연 하듯, 애처롭게 들린다는 표현이나 여음(餘音)가락은 예쁘게 퍼져 나가면서 실같이 이어져 흘러간다는 표현, 마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의 춤 같고, 배에 의지한 젊은 과부가 남편을 기리며 우는 듯 하다는 감상 소감은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이 날, 조각배 위에서 통소를 불었던 연주자는 소동파라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면서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음악애호가를 만났던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소동파는 통소를 연주해 준 손님에게 그가 듣고 감탄한 느낌을 전하면서 “어찌해서 그 소리가 그토록 구슬픈가요?”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손님은 “달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도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는 조조의 시구(詩句)인데 달은 조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자신의 위력을 뜻하는 말이고, 별이 드물다는 의미는 자신의 위력 앞에 적의 장수들이 그림자를 감춘다는 의미를 표현한 말이다. 까막까치는 유비 등이 몸을 붙일 곳도 없이 남쪽으로 도망가는 것을 뜻하고 있다 .

 

통소를 불었던 객의 대답은 계속된다.

 

“서쪽으로는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얽히고 우거져 아득한데, 이곳이야말로 조조가 주랑에게 곤욕을 당한 곳이 아닌가요!, 조조가 한창 기세를 올릴 때에는 형주를 부수고 강릉을 내려 물길을 따라 동으로 나아갈 때, 배는 서로 이어 천리를 흘러 뻗고, 깃발은 휘날려 하늘을 덮었는데, 새 술을 걸러 술잔을 기우리며 창을 비껴 시를 읊으니 이는 진정 일세의 영웅일러니 지금 조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기세 좋았던 조조도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고, 화용도 좁은 길에서 관우에게 목숨만을 구걸하여 돌아갔는데,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이 대목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한 영웅도 지금 간곳이 없으니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그러함에도 선생과 나는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사슴을 벗하면서 한 잎 조각배 위에서 서로 술을 권하고 있으니, 우리는 천지(天地)의 하루살이이며 창해의 좁쌀 한 알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네 일생이 너무도 짧은 것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부럽기에 그 애달픈 마음을 가을바람에 붙여 한 곡조 불었지요.” 어찌해서 통소소리가 그토록 구슬픈가의 대한 객의 대답이 일품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