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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이동원 <가을이 오기 전에는>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16]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아마 그는 걸어서 갔을 것이다.

사막보다 뜨거운 호수 바닥을, 진흙비늘이 이는 마른바닥을 먼지를 일으키며 걸었을 것이다. 화살 같은 햇살이 쏟아져도 소주 한 병 쯤은 허리춤에 차고 갔을 것이다.

사바세계의 끝에서 얼마나 망설였을까?

내가 꿈속을 걸어왔는가.

이제 꿈에서 깨려는가, 다시 긴 꿈을 꾸려는가.

그는 꿈에서 깨는 대신,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평생 동안 술통 역할을 해준 육신을 남겨두고 긴 꿈의 세계로 건너가고 말았다.

 

“반듯이 누어 편안히 갔더래. 심장마비겠지.”

“건강검진도 안했나?”

“일부러 안했겠지. 바라던 대로 됐지 뭐.”

그 때는 잘 몰랐다.

주위의 한숨소리에 같이 가라앉았고 가족들의 울음소리에 슬픈가보다 했다.

가끔 희뿌연 천장만 멀뚱히 쳐다볼 뿐, 나는 그렇게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그의 장례식을 다녀와 일상으로 돌아갔다.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침침한 조명 사이로 (최)헌이 형도 보이고 (김)정호 형도 보였다.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이는 종태 형이었다. 평소보다 얼굴이 화사하고 노래도 훨씬 좋았다.

“아, 참! 종태 형은 죽었지!”

내 꿈에 그가 온 것인가, 내가 그의 긴 꿈속으로 들어간 것인가?

나는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아, 차종태.

그와 새운 밤들은 얼마였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또 얼마였던가. 그의 두툼한 입술이 열리면 터진 쌀자루 마냥 가요계의 뒷얘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가 떠난 얼마 동안은 그가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한 일 년쯤 지나자 그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 가을엔 무척 그리워진다.

 

그날도 비 오는 가을밤이었다."내가 가장 아끼는 앨범이야. 동원이를 처음 만날 때 생각이 나서 가지고 왔어"그는 이동원의 앨범을 목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뒤 살구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날 꽃향기 따라 가버리고 말았다. 사, 오년 전쯤 얘기다.

 

  

   가을이 오기 전에는

 

   가을이 오기 전에는

   한마디 말도 없더니

   우수수 낙엽 지는 밤

   불현 듯 다가온 사람

   첫마디 사랑 이야기는

   바람이 몰아가더니

   떨어진 꽃 잎 새마다

   얼룩진 발자욱

 

이동원이 데뷔 5년만인 198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은 앨범 타이틀이 없다. 꾸밈과 드러냄을 절제하는 그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다.1면 첫 트랙의 <가을이 오기 전에는>은 글쓴이의 애청곡 50선 안에 꼽히는 곡으로, 한국 포크 록의 선구자인 이주원이 작사 작곡 하였다. 강인원, 전인권, 나동민과 함께 "따로 또 같이" 라는 포크 그룹을 만들어 이끌었던 인물이며, 샹송가수 전마리의 남편이기도 하다. 표지 그림은 영화음악의 거장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탁월한 이론가인 신병하가 그렸다.

 

애잔한 알토 색소폰 연주로 문을 여는 <가을이 오기 전에는>에서 우리는 이동원만이 지닌 가을의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다. 이동원의 목소리는 결이 여럿이며, 포근한 지성미를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오는 샹송풍의 노래와 잘 어울린다. 그의 독특한 박자감과 호흡 역시 매력을 더해준다.

 

이 앨범은 이동원이 주류에 편입되기 이전의 해맑은 영혼이 수록되어 있는 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