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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신비스런 ‘거문고병창’으로 태어난 용비어천가

거문고앙상블 <라미>, 제4회 정기연주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거문고병창? 가야금병창이라면 몰라도 아마 들어본 사람이 전혀 없을 일이다. 그러나 어제 인천서구문화재단 소공연장에서는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생겼다. 바로 거문고앙상블‘라미(藍人)’ 제4회 정기연주회 “뿌리 깊고 샘이 깊게 <인천, 거문고로 물들이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연주가 시작되자 9현 개량거문고가 아주 묵직한 저음을 토해낸다. 이 신비스러운 연주는 청중의 가슴을 후벼내고 있다. 거문고가 남성의 매력을 담아준다고 하지만, 여기 여성 거문고 연주단 라미는 우리도 있다고 얼굴을 들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8인의 현란하면서도 장중한 거문고 4중주는 연주자들의 창과 함께 장내를 숨죽이게 만든다.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은 물이 마르지 않네!” 장중한 그러면서 저 깊은 심연의 물을 끌어올리는 듯한 소리가 저음과 고음을 교차하면서 잔잔히 울린다. 2016년 제1회 국제 박영희 작곡상 대상을 받은 바 있는 이예진 씨의 작곡 “거문고를 위한 노래 <나무 그리고  물>”이 초연되는 것이다.

 

 

“거문고를 위한 노래 <나무 그리고 물>”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의 가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작곡자는 말한다.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와 깊은 샘을 가진 물이 시련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어 꿈을 이루는 이야기다. 작품의 구조도 시의 시선에 따라 나무와 물, 바람과 가뭄, 꽃 그리고 냇물, 열매와 바다 등 네 개의 구획(section)으로 나누었다. 연주자들의 노래는 각 구획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킨다. 네 성부(part)로 나눈 거문고의 개방현을 다르게 조율하여 풍성한 울림을 낼 수 있도록 하였고, 거문고의 괘와 술대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고자 다양한 특수주법을 사용했다.”라고 말이다.

 

많은 거문고 연주를 들었지만 이렇게 심연의 깊이를 울려주는 거문고의 음악과 더불어 거문고병창이라는 새로운 경지에 다다르게 한 적이 없었다. 작곡자와 연주자가 혼연 일치된 음악에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손뼉을 쳐주고 또 쳐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어서 연주된 “사랑가 주제에 의한 옥오지애(屋烏之愛)”를 듣는 순간 나의 거문고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간다.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를 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인 김기범 씨가 거문고 3중주로 작곡해냈다. “옥오지애(屋烏之愛)”는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마저도 사랑한다는 뜻으로 지극한 애정을 이르는 말이란다. 작곡가는 “이 곡은 <라미> 앙상블을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거문고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음악이 많은 이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고 들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곡했다.”고 털어 놓는다.

 

이 역시 거문고와 창이 하나 되어 마법의 소리를 들려준다. 판소리 장르로만 들었을 때와 또 다른 기막힌 매력이다. 거문고 연주만으로도 벅찰 텐데 연주자들은 청아한 소리로 공연장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밖에 이날 연주된 곡들은 이선희 편곡의 거문고 3중주 <화현성>, 박병오 작곡의 거문고와 양금에 의한 4중주 <거지중천(居之中天)>, 계성원 작곡의 거문고 4중주 <거문고 타고 싱싱싱>, 이선희 편곡의 거문고 2중주 <얼쑤! 거문고> 등이었다.

 

거문고 앙상블 <라미>는 거문고 음악의 정통성과 현대성, 대중성을 동시에 아우르고자 결성된 거문고 합주단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핵심어 ‘람(藍)’과 사람 ‘인(人)’을 합해 람인(藍人) 곧 <라미>로 이름 지었는데 거문고 음악이 세대를 아우르고 시간이 갈수록 더 짙은 혼이 우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 하였다고 말한다.

 

 

 

“거문고 타던 백아는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종자기가 죽고 나자 세상이 텅 빈 듯하여 이제 다 끝났다 싶어서 허리춤의 단도를 꺼내어 거문고 다섯줄을 북북 끊어버리고 거문고 판은 팍팍 뽀개 아궁이의 활활 타는 불길 속에 처넣어 버리고 스스로 이렇게 물었겠지. ‘네 속이 시원하냐?’ / ‘그렇고말고.’ / ‘울고 싶으냐?’ / ‘울고 싶고말고.’”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燕巖集)》에 나오는 얘기다. 종자기는 백아(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명인)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좋다. 우뚝하기가 마치 태산 같구나.” 하였고, 흐르는 물을 마음에 두고 연주하면 “좋다 도도양양하기가 마치 강물 같구나.” 했을 정도로 백아의 음악을 뼛속으로 이해했던 사이이니 어찌 그런 벗이 죽었을 때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판을 빠개버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음악 연주자는 곁에 자기 음악을 뼛속 깊이 사랑해주는 귀명창이 있을 때 행복할 것이다. 이날 연주를 들은 청중들은 백아의 벗 종자기처럼 <라미> 음악의 진정한 벗이 되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