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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박물관 금동공예탑을 보며 고대 구층목탑을 그려본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372년 고구려, 384년 백제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뒤, 한국 땅은 불국토가 되어갔다. 그러나 서력기원 45년 가야땅에도 수로왕비 허왕옥이 인도의 불상과 탑을 가지고 온 기록이 있으니, 불교의 역사는 300년 이상 더 길다. 이렇게 들어온 불교는 삼국시대가 지나고 고려시대가 된 뒤에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어 한국문화는 온통 불교문화로 화려하게 꽃피웠다. 이른바 불국토다.

 

한국의 불교문화 중에는 매우 화려한 불상과 석탑과 건축물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건축물로는 백제시대인 600년 초기에 무왕이 미륵불국토를 염원하며 건립한 익산 미륵사가 있었다. 그 미륵사에는 목조로 9층목탑을 가운데 세우고, 양쪽에는 9층석탑을 세웠다. 

 

이를 본 신라는 백제의 미륵사 9층목탑과 같은 훌륭한 탑을 짓고자 선덕여왕과 자장율사의 간청으로 백제의 대목장 아비지를 초청하여 황룡사에도 9층목탑과 금당을 비롯한 건축물들을 지었다. 한편 이때 고구려는 당나라와 치열한 전쟁중이었고, 또 도교를 들여와 불교가 탄압받는 상황이어서 불교건축물은 오히려 백제나 신라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제나 신라는 바로 그곳이 미래의 불국토임을 내세워 현실속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불심으로 통일하고, 서로가 자신들의 나라가 미래 부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 세웠던 미륵사구층목탑이나 황룡사구층목탑은 그 높이가 거의 90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하지만 그런 탑은 1200년대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런 목탑의 모양을 그대로 축소하여 청동으로 만들어 이를 법당에 안치하였던 것이 위 사진의 금동다층탑이다. 이 금동탑의 출처는 정확히 어디였는지 알수 없어 무척이나 아쉽지만, 이 탑의 평면은 사방 3칸으로, 한쪽면에 기둥이 4개씩 보인다. 탑의 기초인 기단은 2층이며, 기단위에 탑의 층수를 나타내는 11층 탑(탑신+옥개석)을 세웠고, 그 위에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상륜부를 두어, 비록 작지만 그 모습속에는 거대한 11층의 목탑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각각의 부재는 청동으로 주조하여 만들고, 각층의 목조로 된 탑신과 기와지붕인 옥개석을 그대로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자세히 보면 기둥 위에는 화려한 공포가 3단으로 돌출하여 이 모습을 확대하여 지으면 그것이 바로 미륵사9층목탑이나 황룡사9층목탑이 될 듯 보인다. 목조건축의 주요구조재인 기둥, 창방, 공포, 서까래, 부연 등의 모습도 정밀하게 만들었고, 특히 공포대의 출목과 지붕위 용머리장식도 매우 화려하다.

 

각층에서 외부로 돌출하여 난간을 둘렀고, 지붕의 추녀마루 끝 모서리에는 용머리장식 기와가 있으며 끝마감을 장식적으로 화려하고 구조적으로는 확실하게 마무리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어떤 전통건축물보다도 더 화려하다.

 

또 11층 지붕 위에 세워진 상륜부는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 보다도 훨씬 화려한 장식이며 비례상으로 보면, 탑신부의 1/2정도로 높이 솟아있다. 현재 일본의 전통 목탑은 5층목탑이 많은데, 지금 보면 한국에 없는 건축물들이라 무척이나 부럽다. 이런 일본목탑의 상륜부는 무척 화려하지만, 한국에 있었던 미륵사구층목탑이나 황룡사구층목탑은 일본의 목탑보다도 훨씬 더 크고 화려하였음을 박물관에서 만난 금동공예탑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사책 기록으로나 알 수 있는 1400년전에 이룩했던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건축기술을 이제사 박물관의 금동다층공예탑에서 새삼 절실히 느껴본다.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금동공예탑의 높이는 75cm이다.

 

위 금동공예탑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전시실에 지금 전시 중이다.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