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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을 논할 수밖에 없었던 선인들의 상상력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에 담겨 있는 민심과 천심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10월호 펴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유교이념과는 거리가 있지만, 선현들이 남긴 기이하고 신기한 기록

조선의 집단 무의식이 응집된 창조적 상상력의 보고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선인의 상상력’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를 발행하였다. 조선시대 선현들의 수많은 기록에는 일식과 월식, 혜성과 같은 천문현상과 우박, 천둥, 번개와 같은 기상현상,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재난, 기이한 동식물의 등장과 행동 등 다양한 자연현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기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현상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상상하였다.

 

이번 웹진 10월호는 ‘기이한 소문과 신기한 이야기- 선인들의 상상력’을 주제로 하여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상상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짚어 보았다.

 

괴력난신은 전설과 괴담의 주요 이야깃거리

구전과 기록으로 전승되었으며 고전소설로 진화

 

《논어》 술이편에는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셨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괴(怪)는 기괴한 일을 말하며, 력(力)은 차력처럼 초인적인 힘, 난(亂)은 난세에서 일어날 법한 막 나가는 현상들, 신(神)은 초자연적인 신비로운 일을 가리킨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왕조국가로서, 모든 선비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모든 선비들과 백성들은 괴력난신을 입에도 담지 말아야했건만, 괴력난신은 버젓이 살아남아 전설이나 괴담으로 구전되거나 일부 기록으로 남겨졌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고전소설의 주요 주제로 등장하면서 백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면 전통시대 괴력난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되었을까? 이야기에 담긴 경험과 상상력은 조선시대 민초들의 팍팍한 삶과 어두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선현들의 일기자료에 담겨 있는 기이한 이야기들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흉흉해지고 피폐해진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창작자들은 현실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환상의 세계를 그리기도 하며,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물과 현상을 왜곡하거나 변형하기도 한다.

 

얼굴이 여섯인 물고기ㆍ땀 흘리는 탕평비ㆍ용 머리에 늑대 몸인 아이

나라가 흉흉하니 이상한 징조가 연이어 나타나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8년 되는 해였던 선조 39년(1606) 6월 20일, 정경운은 《고대일록》에 황해도에서 얼굴이 여섯이며 길이가 10척쯤 되는 물고기가 잡혀 장계를 올렸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일기로 남긴다.

 

 

철종 3년(1852) 9월 28일, 서찬규는 《임재일기》에 ‘땀 흘리는 비석 이야기’를 기록한다. 일주일동안 비가 몹시 오고 춥다가 비가 그친 날, 성균관 사람들이 탕평비(蕩平碑) 앞으로 분주히 달려가 ‘비석이 땀을 흘린다’며 매우 괴이하게 여겼다. 서찬규는 최근의 기후 때문에 생긴 과학적 현상으로 다른 비석도 마찬가지라고 해석하지만, 성균관 유생들이 영조대왕의 ‘탕평비’가 땀을 흘린다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극심한 세도정치로 기울어가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읽혀진다. 민심은 천심인지라, 이 소식은 이튿날이 되자 장안에 널리 퍼졌다.

 

 

을사늑약이 있기 1년 전이었던 1904년 8월, 박주대(朴周大)는 《저상일월(渚上日月)》에 의성의 금성산 밑에서 용머리에 이리 몸을 하고 온몸에 털이 나 있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부부는 이를 해괴히 여겨 땅에 파묻었는데, 묻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역시 살아서 먼저 돌아와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는데,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안동에 있는데, 아직 그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다’고 하였다.

 

괴력난신 이야기에 기댄 백성의 마음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힘,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힘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관료들과 유생들이 괴력난신을 하늘이 전해주는 심상치 않은 신호로 인식하며 사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현실 생활에 고통 받는 백성들은 이상사회를 꿈꾸며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로 삼았다. 또한, 백성들 사이에 유행하였던 이야기는 그들이 품고 있는 원한을 통쾌하게 풀어내는 한풀이의 장이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창작자’는 당대의 사회상을 꼬집거나 현실에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을 이야기로 구체화하여 다수의 청중들을 위로하거나 열광시켜 왔다.

 

현실에서의 좌절과 미래의 희망이 뒤섞여 온 ‘아기장수’이야기는 2017년 인기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으로 창작되었으며, ‘구미호’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 단골메뉴였고, 최근에도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갑질 사또의 원한을 품고자 하는 ‘처녀귀신’ 이야기 또한 2012년 방송된 20부작 드라마 ‘아랑사또전’으로 창작되었다.

 

선현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이 시대의 창작콘텐츠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수상한 그녀’의 홍윤정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참조)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선현들의 무한한 상상력

선현들의 일기류에서 새로운 창작소재 발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바탕으로 4,27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달마다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웹진 담(談) 편집위원이자 이번 호 필자로도 참여한 공병훈 교수(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칼 구스타프 융과 그의 동료들은 집단으로 전승되는 신화ㆍ전설ㆍ민담을 집단무의식의 ‘원형(archetypes)’이 녹아 있는 지혜의 보고(寶庫)로 여겼다.”면서, “전통 이야기 속 집단무의식은 백성들의 염원과 지향을 담고 있는 만큼, 사회변화의 폭이 큰 오늘날의 감수성에 맞게 새로운 창작콘텐츠로 활발하게 재생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