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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18년째 한국에 와 순국선열 위령제 지내는 일본인들

어제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서 일본인이 중심이 된 위령제 열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13일, 토)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에서는 “제18회 순국선열정신선양대회 및 한일합동위령제”가 열렸다. 행사가 진행되는 독립관 뜰 입구에는 일본 각지에서 이번 위령제 추모를 위해 보내온 화환들이 즐비한 가운데 300여명의 참석자들이 뜻깊은 위령제를 지켜보았다. 일찌감치 행사장에 도착한 기자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장에서 만난 일본인 두 명에게 위령제에 참석한 동기를 물었다.

 

 

 

“올해로 한국 생활 25년째입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수많은 한국인이 고통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어 사죄의 심정으로 이 위령제에 참석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위령제는 일본국가가 나서서 할 일이지만 우선은 민간 차원에서라도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오카와 마리코(大川麻理子) -

 

“저는 1991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일제침략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바친 그 용기와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일본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위령제 참석은 이번이 3번째입니다만 위령제를 통해 조금이라도 영령들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키야 노리코(浮谷典子) -

 

행사는 식전 행사로, ‘젊은 무희( 이시다 마리꼬), 살풀이 춤(허나미), 천의 바람이 되어(다카다 지히로) 춤 공연이 있었고 이어 본 행사로 이어졌다. 이번 행사가 한일 합동 위령제인 만큼 행사를 알리는 고천문 낭독과 한일 두나라 스님들의 기원문으로 위령제의 막을 올렸다.

 

 

“저는 여기 서면 언제나 일본의 침략으로 숨져간 한국인 영령께 죄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18년 전부터 민간인들이 모여 이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침략전쟁은 두 번 다시 용서할 수 없는 인류의 범죄입니다. 일본은 이를 반성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번 행사를 18년째 이끌고 온 사토 미도리(佐藤みどり)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일본인회' 회장의 인사말이었다. 고운 한복 차림의 사토 회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어 김시명(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은 환영사에서 “민간 차원에서 합동위령제를 이끌어 오고 있는 일본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도발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온적이 태도 등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이 없이 부르짖는 평화는 공염불이란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진정으로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더 나아가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밑거름일 것입니다” 라고 했다.

 

 

환영사에 이어 이성헌 전 국회의원과 아마노 마사키(天野正基) 아이치현 의원, 이홍배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종친회장 등의 축사가 이어졌다.

 

마지막 순서로 이날 위령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순서는 이대영 선문대 한국어교육원 유학생 대표의 인사였다. 이대영 학생은 선문대 학생 134명과 이날 위령제 참석에 앞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았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어 “저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일본에 살고 있지만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처음으로 침략시기의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분노감과 일본인이 갖고 있는 미안함을 백퍼센트 느끼지는 못하지만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일본은 잔인한 짓을 했을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일본은 과거 지은 죄를 제대로 사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국인도 그러한 일본을 용서하고 함께 오늘처럼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합니다. 민간 신분의 일본인들이 오늘과 같은 자리를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점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리 준비한 원고 없이 이대영 학생은 절절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해 참석자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비록 대학생 신분이지만 이대영 학생이 느끼는 미래는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란 말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가해국이 결단하면 풀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해국이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 다시말해 피해국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에 발전적인 평화로운 모습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영유권을 아예 교과서에 싣고 도쿄에 자료관을 만들어 노골적인 영유권 주장을 고착화 시키고 있는 일,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눈감고 있는 일 등은 한국인이 가장 ‘원치 않는 일’ 임에도 이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인들도 이대영 학생이 꿈꾸는 ‘용서하고 화해했으면 하는 바람’을 쉽게 풀수는 없을 것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의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했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풀어야할 과제는 광복 73돌에 이르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자신의 나라(일본)의 침략으로 희생된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올해로 18년째, 해마다 40여 명씩 일본측에서 경비를 마련해 한국으로 건너와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은 감동스러웠다.

 

 

 

이번 위령제 참석자들 가운데는 국내 거주 일본인들도 대거 참석했으며 특히 이들은 하루 전인 12일날에도 이곳 독립관을 미리 찾아 순국영령들을 모신 위패 봉안관을 비롯하여 독립관 안팎의 먼지를 털어내고 정원의 풀을 깨끗이 뽑고 정리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것이야 말로 마음에서 우러난 위령제에 임하는 일본인들의 자세인 것 같아 한국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울러 사토 미도리 회장은 물론 이번 위령제를 위해 건너온  일본인들은 모두 고운 한복차림이었다. 위령제를 올리는 나라가 한국이니만치 한복을 입자라고 뜻을 모은 듯했다. 사실 기자 역시 소리소문없이 18년째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어제 처음으로 보게되었다.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