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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왜구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제주 별방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2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가면 제주특별자치도 시도기념물 제24호 별방진(別防鎭)이 있습니다. 이 별방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목조에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제주 동부지역 가장 큰 군사기지였습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별방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 2,390자(약 724m), 높이 7자(약 2m)라고 하며, 조선 중종 5년(1510)에 목사 장림(張琳)이 왜선의 정박지가 근처의 우도(牛島)에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성을 쌓은 뒤 금령의 방호소(防護所,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요충지에 설치하여 침입을 막기 위해 방호 임무를 수행하던 군대의 경계 감시소)를 이곳으로 옮겨 별방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또 동ㆍ서ㆍ남 등 3문과 문 위에는 초루(譙樓, 성 등의 문 위에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지은 집)가 있었으며, 성의 형태는 동서의 길이가 긴 타원형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南高北低)였지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그린 <탐라순력도> 가운데 “별방조점(別防操點)”에는 조방장 1명, 성정군 423명, 목자와 보인은 187명, 말은 946필, 창고의 곡식은 2,860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남은 성의 둘레는 950m이며 길가에 수직으로 쌓은 이 돌성은 성벽 위가 1m 가량의 넓이로 되어 있어서 그 위를 산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성의 보존 상태는 동문터와 서문터는 민가에 의해 변형되어 그 위치만 겨우 찾아볼 수 있으며, 남문터에는 옹성만 훼손이 심한 상태로 남아 있고, 문루(門樓)는 찾아 볼 수 없지요. 이 별방진은 제주도에 있는 성곽들 가운데 비교적 성벽이 많이 남아 있어 당시 이 지역의 성 쌓는 방법과 규모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