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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공훈록 사진 꼭지, 비워있는 까닭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기록물에 쓴소리 (3)
인터넷에도 얼마든지 떠있는 사진들, 보훈처는 없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기록물에 대한 쓴소리 3회째는 사진부분이다. 전자공훈록(국가보훈처 → 전자공훈록 → 독립유공자공훈록)에는 독립유공자 이름 옆에 네모반듯한 액자 형태의 사진을 싣는 꼭지가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이 눈길을 끈다. 꼭지만 만들어놓고 빈칸으로 놔둔 게 많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나 김구 주석은 사진이 실려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이상룡 선생이나, 제2대 대통령인 박은식 선생, 차리석, 노백린, 오광선 장군 등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사진칸은 빈칸으로 남아있다.

 

 

사진이 없어서 그렇다면 몰라도 이상룡 국무령이나 박은식 대통령, 오광선 , 지청천 장군 등의 사진은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도 널리 공유하고 있음에도 이분들의 사진은 빠져있다. 누군 싣고, 누군 싣지 않는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진이 없는 분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버젓이 있는 사진들을 안 올리는 것은 담당자의 게으름일 뿐이다.

 

여성독립운동가로 가면 그 상황은 더 심하다. 유관순, 남자현, 김마리아 등 몇몇  분만 사진이 올라 있을 뿐 300여명에 이르는 여성독립운동가 사진은 상당수 빈칸으로 남아있다. 사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기자는 지난 8월 중순 미주지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차인재(1895-1971, 2018년 애족장)지사의 외손녀딸인 윤패트리셔(한국이름 윤자영, 71살) 씨와의 대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소문 끝에 8월 13일, 윤트리셔 씨가 살고 있는 헌팅턴비치의 조용한 단독주택을 찾았다. 윤패트리셔
씨 집은 기자가 묵었던 LA코리아타운으로부터 승용차로 1시간 여 거리에 있었는데 정원을 갖춘 2층 주택들이 즐비한 곳으로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윤패트리셔 씨는 기자 앞에 두툼한 앨범 여러 권을 가지고 나와 외할머니(차인재 지사)와 외할아버지(윤치호 지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앨범 속에는 차인재 지사가 이화학당에 다니던 때의 사진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사진이 사진첩 속에 빼곡했다. 더 놀라운 것은 윤패트리셔 씨의 말이었다.

 

 

자신은 올해 71살로 자녀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죽으면 이 사진들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할머니(차인재 지사) 고국에서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이 사진첩의 뒤를 맡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내비쳤다. 자신의 대를 이을 후손이 없는 관계로 사후 이 사진첩의 향방을 걱정하던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2세들의 나이도 이제 70을 넘어 80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자신들이 간직해왔던 독립운동가 선조들의 사진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에는 차인재 지사의 차고 넘치는 사진은커녕 2018년 3.1절에 서훈을 받은 지 지금까지 7달이 지났는데도 공훈록에 이름 조차 올라 있지 않은 상태다.

 

 

또 한 분, 임성실(1882-1947,2015 건국포장) 지사의 예를 들겠다. 임성실 지사의 증손녀인 머샤(Marsha Oh Bilodean, 62살) 씨를 만난 것은 8월 11일 (현지시각)로, 로스앤젤레스 가든스윗 호텔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도산 기념동상제막 17주년 합동 기념식 –파이오니어 소사이티 연례 오찬회-에서 였다. 행사 뒤 머샤 씨 집에 가서 별도의 인터뷰를 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머샤 씨는 기자가 귀국 후에 메일로 할머니(임성실 지사)의 독사진과 가족사진, 그리고 집안의 가계도를 보내왔다.

 

 

이처럼 특히 미주 지역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보다 카메라 보급률이 높았던 관계로 사진자료들이 풍부하다. 후손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을 국가보훈처가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입수하여 독립유공자공훈록에 실을 수 있건만 텅텅 비워놓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후손 연락처를 알고 있는데도 어찌해서 사진칸을 비워놓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같은 일반인들이야 개인정보법 때문에 후손 연락처를 알아내기가 하늘의 별따기일뿐더러 출장비 단돈 1원이라도 받는 곳이 없이 자비로 후손들을 만나야하는 입장이지만 국가보훈처의 경우는 입장이 다르지 않는가! 출장이라도 다니면서 후손들로부터 사진을 구해 빈칸을 메워 놓아주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국내나 만주 쪽에서 활동하신 분들은 사진이 거의 없지만 임시정부와 함께 동고동락 했던 독립운동가들이나 미주지역의 경우에는 구하려고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사진을 구할 수가 있다고 본다. 실제 기자도 그렇게해서 사진을 구했으니까 말이다.

 

사진을 싣기 위해 만들어 놓은 칸을 비워 둘게 아니라 박은식, 오광선, 지청천 장군처럼 사진이 있는 분들이라도 빈칸을 채웠으면 한다. 사진 문제는 독립운동가공훈록에 올라 있는 15,052명을 전수 조사하여 확보할 수 있는 분들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진을 구해 올려주길 바란다.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지말고 전담부서라도 두어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구해 국민에게 공개해주어야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