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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범어사에서 만난 버려진 시주 빗돌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을 금정산을 그리며 어제(28일) 범어사를 찾았으나 이곳의 단풍은 아직 일렀다. 그 대신 초파일에 달아두었던 알록달록한 연등이 가을 단풍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웅전을 향해 걸으면서 범어사와 인연이 깊었던 의상, 표훈, 동산 스님 등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흔들림 없이 꼿꼿한 시대를 읽어나갔던 고승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이분들의 삶이야말로 알록달록 단풍 같은 세월을 살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푸른빛으로 때로는 붉은빛으로 범어사를 지켜왔을 그 모습을 그리며 법당에서 삼배를 올렸다.

 

 

 

금정산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고찰로 <세종실록 지리지 150권>에는 경상도 경주부 동래현 기록에는 “금정산석정(金井山石井)은 높이가 세 길 가량 되는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 깊이가 7촌 가량인데, 물이 항상 가득히 차 있어서, 비록 가물지라도, 마르지 아니하고 빛이 황금과 같다. 그 밑에 범어사(梵魚寺)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예전에 금빛고기(金色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으로부터 내려와서, 그 가운데서 헤엄쳐 놀았으므로, 이 이름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元來未曾轉(원래미증전) 원래 일찍이 바꾼 적이 없거니

豈有弟二身(개유제이신) 어찌 두 번째의 몸이 있겠는가.

三萬六千朝(삼만육천조) 백년 3만 6천일

反覆只這漢(반복지저한) 매일 반복하는 것, 다만 이놈뿐일세.

 

이는 한국불교계의 거목이며 초대종정으로 추대된 범어사 조실 동산대종사(1890~1965)가 입적 전에 읊은 게송이다. 당시 동산대종사가 입적하자 <대한불교신문>은 1965년 4월 25일자 호외를 발행하여 대종사의 입적을 알렸다.

 

 

호외 내용의 일부를 보면, “(앞줄임) 우리나라 선찰대본산 범어사의 조실 화상인 동산(東山) 대종사께서 24일 하오 6시 범어사에서 조용히 입적하셨다. (가운데줄임) 스님은 54년의 법랍을 지니신 향년 76세로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범어사에 입산여 용성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이래 줄곧 한국불교의 향상과 해외교류, 도제양성 및 금강계단의 전계사(傳戒師)로서 명실 공히 한국불교의 주축이시었다. 특히 한국불교정화를 위하여는 그 선봉에 섰고, 방금 정화불사의 결실을 앞두고 입적하시니 종단은 물론 세계의 불교도들이 애도하는 바 크다." 고 전했다.

 

 

 

천년 고찰 범어사를 찾은 시간이 저녁5시 무렵이라 이미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절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고승들의 발자취를 새기며 범어사를 나와 절 입구쪽 나무다리에 이르렀다. 나무다리 밑에는 계곡물이 시린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천 년 전에도 여전히 흘렀을 물줄기를 무심히 바라다보다가 나무다리 밑 계곡에 처박혀 있는 빗돌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빗돌에는 ‘시주 이무상 봉(施主 李無相 奉)’ 이라는 글씨가 선명하였다. 빗돌은 계곡의 돌과 함께 뒤 섞여 있었지만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면 눈에 띄는 빗돌이었다.  ‘시주 이무상 봉(施主 李無相 奉)’의 빗돌은 어찌하다 범어사 입구, 나무다리 아래 계곡 속에 고꾸라져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말이다.

 

 

버려진 게 아니라면 혹시 절 어딘가에 세워졌던 것이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 떠내려 와 나무다리 아래까지 밀려와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주차장 쪽에서 범어사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건너야하는 나무다리 밑에서 발견한 이 빗돌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렇게 쳐 박혀진 상태로 놓여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은 드나들고 있는 나무다리 아래, 흐르는 계곡물 속에서 ‘시주 이무상 봉(施主 李無相 奉)’이란 글자를 드러낸 채 누워 있는 빗돌의 주인 ‘이무상(李無相)’은 누구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범어사 경내에는 시주자 이름을 새긴 빗돌이 여럿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범어사 뿐 아니라 집과 재산을 팔아 부처님 전에 바친 고귀한 시주자들이 아니었으면 오늘 한국의 절집들이 그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거액의 시주자도 있었을 것이고 쌀 한말을 이고 나른 신심 깊은 아낙들도 있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시주(施主) 풀이를 보면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되어있다. 시주자들이 조건 없이 절에 시주를 하는 것은 자비심(慈悲心)에 의한 것이지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시주를 받은 절 쪽에서 시주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주고 있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사후 관리도 아름답게 해야 하지 않을까?

 

 

범어사 입구 나무다리 아래 계곡의 돌 틈 사이에서 신음하는 ‘시주 이무상 봉(施主 李無相 奉)’ 의 빗돌을 건져 올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렇게 지낸 것인지, 시주자가 누구인지 밝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문을 내려왔다.

 

내 어제 집 팔아

절을 위해 보시했다

 

내 이름 석자

새기라고 한 적 없지만

 

그 공적 흠모하여

새겨준 빗돌

 

나 죽고 세월이 흘러

계곡 밑에 고꾸라져 있을 줄을!

 

사람들아

집 팔아

너무 큰돈 시주하지 마라

 

지금 세운 큰 빗돌

내일

흐르는 계곡 물에

나뒹굴리라.             - 이윤옥 ‘이름 모를 시주자를 위한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