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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일제강점기 재담소리, 대중들에게 큰 위안 줘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화용도(華容道) 좁은 길목에서 조우하게 된 조조와 관우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조가 부하들의 권고대로 관우에게 빌면 관공은 대꾸도 없이 “이 놈,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치고, 조조가 “전일을 생각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면 관공은“너는 한(漢)나라 적신이고, 나는 한나라 의장이라. 너를 보고 놓겠는가?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친다는 이야기,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수하 장졸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장군님 덕행으로 우리 승상 살려 주시면, 여산여해 깊은 은혜 천추만세를 허오리다.”에 관우는 조조를 쾌히 놓아 주고 돌아와 공명께 보고한다. “용렬한 관모는 조조를 놓았사오니 의율시행하옵소서” 공명이 내려와 손을 잡고 회답하되,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 충의가 무엇이고, 사나이들의 의리가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적벽가 끝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번 주에는 신념과 자부심이 남다른 경기소리 명창, 노학순의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발표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반적으로 재담(才談)이라고 하면 ‘남을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남을 웃기려면 정상적인 언어나 행동으로는 어렵다고 판단되어 어눌한 말이나 또는 바보짓과 같은 우둔한 행동, 등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형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재담의 진정한 의미는 겉으로는 우둔해 보여도, 그 언행 안에 녹아 있는 재치(才致)와 풍자로 사회의 불의(不義)나 불합리한 면을 익살스럽게 비판하기도 하고, 또는 습관화 되어 있거나 고정된 생각을 유연하고 경쾌하게 흔들 수 있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암울했던 지난 세기 초엽,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끝을 모를 때였다. 일제에 의한 강압시대는 우리 선인들은 웃음을 잃고 힘겹게 목숨을 연명하던 불행한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 곧 1900~1940년을 전후해서 구극(舊劇)의 중심으로 불리던 사람은 단연 박춘재(1877~1950)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원래 박춘경으로부터 경서도 긴잡가를 배웠으나, 그밖에도 가사와 시조, 민요 등이 출중했을 뿐 아니라, <장님 흉내내기>나 <개넋두리>, 각종 <장사치 흉내내기>, <발탈>, <장대장 타령> 등의 재담소리도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당시 웃음을 잃고 살던 일반 대중들은 박춘재의 재담소리로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장대장타령>은 줄거리가 있는 재미있는 소리였는데, 이 소리는 박춘재에 의해 이 순일, 홍경산 등에게 전해졌다. 또한 선소리 산타령의 최초 보유자였던 정득만도 사설의 부분 부분이나 또는 노래의 대목, 대목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어서 이 소리를 되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홍경산은 <장대장타령> 전체의 사설을 기록하여 벽파 이창배에게 전해 주었고, 벽파는 이 내용을 1976도판 그의 저서 《한국가창대계》에 싣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에 <장대장타령>을 완판으로 실연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거의 없었다. 세인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 가며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때,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경서도 소리를 배워 일가를 이룬 큰 제자, 백영춘이 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정득만의 소리를 중심으로 흩어진 자료를 찾고, 가사와 가락을 정리하여 옛 모습으로 국립국악원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전통 재담극인 <장대장타령>의 무대공연이 거의 끊겨있는 상태에서 이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백영춘 명인과 그의 제자들인 최영숙, 노학순 등은 10여 년 전, 박춘재-이순일, 홍경산-정득만-백영춘으로 이어진 재담소리 <장대장타령>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기에 이른다.

 

지난 주 성동구 문화원 대극장에서 노학순과 경토리민요단이 펼친 재담소리가 바로 이렇게 힘겹게 이어진 소리제였던 것이다.

 

이번에 제자들과 함께 재담소리극 발표회를 준비한 노학순 명창은 성동구 왕십리에서 자라면서 배뱅이굿의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뒤,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 이은주 명창에게 배워 국가무형문화재의 이수자가 된 명창이다. 그는 일찍이 무학여고의 민요강사로 초청되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전통민요를 가르치기도 한 열성파 선생님이오,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노학순은 경기소리뿐 아니라 춤과 노래, 연기로 다듬어진 경서도 소리극에도 남다른 끼를 타고난 사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기소리극은 판소리와는 달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단체가 한 곳도 없기 때문에 소리극의 발표무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발표무대가 없다는 말은 작품이나 대본, 배우 등등이 없다는 말이 되고, 키우고 양성하지 못한다면 경서도 소리극의 존재는 고사될 것이 분명하다.

 

노학순은 소리극의 한 분야인 서울의 재담소리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서울시 무형문화재 38호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에 입문을 하였고, 예능보유자, 백영춘 명인으로부터 이수를 받게 된다. 그리고 2013년에는 전수교육조교의 인증서까지 받는 노력형의 소리꾼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