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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과 상사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정운복의 아침시평 33]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9월말 선운사에 가면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습니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 종류의 꽃이지만

잎이 지고 난 뒤에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음은 같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볼 수 없으니 상사화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서에 있습니다.

꽃이 먼저 피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잎이 먼저 피었다가 지는 것이지요.

잎이 먼저 나서 영양분을 저장해 두면 그것을 기반으로 꽃이 피어나는 것이니

만약 순서가 뒤바뀌면 그리 아름다운 색을 토해낼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유독 절에 꽃무릇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절에 유용한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곧 꽃무릇 뿌리는 마늘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로 풀을 쑤어 사용할 수 있지요.

이 풀은 불교 경전을 만들 때 바르면 좀이 슬지 않고

탱화를 그릴 때 천에 바르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한 처자가 선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시름시름 앓던 처자는 결국 죽고 말았고

그 처자의 무덤 근처에 하나둘 피어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꽃무릇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사화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 정읍 내장사에

이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붉디붉은 진홍색으로 피어남을 봅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죄가 될 수 없지요.

 

이른 봄 연녹색의 잎이 무성하게 나오고

한 세월 기다리려도 오지 않는 꽃을 그리워하다

6월 햇살에 그리움 안고 말라 죽어가는 이파리....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즉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음은 이 꽃의 특징입니다.

꽃은 잎이 그리워 8월에 꽃대를 헤집고 피건만 잎은 말라 죽어 흔적조차 없으니...

잎과 꽃의 엇갈린 운명

그리하여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으로 <신곡>을 쓴 단테는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을 몹시 사랑했으나,

안타깝게도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같은 사랑이

문학으로 표출되어 위대한 작품을 이룹니다.

 

어찌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애절하고 안타깝습니다.

누구든 첫사랑 그 두근거림의 경험이 없을까요?

죽음보다 진한 사랑

세상에 이보다 위대한 가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