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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생김새도, 크기도 역할도 다른 다섯 손가락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예가, 철학자, 소설가, 건축가, 변호사 이렇게 5명이 모여 책을 냈습니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현재도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책을 내게 되었을까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지난 봄날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인사동 어느 한정식 집에 모인 5인이 그 동안의 삶을 풀어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신작가가 불쑥 말을 꺼냅니다. “우리 같이 책을 낼까요?”그렇게 우리의 책 내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10년 이래 유례가 없었다는 여름 불가마의 한 가운데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글은 곰삭을 대로 곰삭여지고,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는 가을의 들판을 지나와 드디어 지금 이렇게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내는 책 제목은 <다섯 손가락>, 부제는 ‘5인 5색 인문에세이 五人五色’입니다. 책 제목이 ‘다섯 손가락’이라고 하니, “왜 다섯 손가락이지?”라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5인을 대표하여 책머리의 글을 쓴 신아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섯 손가락은 생김새도 각각이고, 굵기와 길이도 다르고, 방향도 그 역할도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한 손바닥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손바닥과 손가락은 전체 손이 되어 다시 팔에 연결되고, 팔은 몸통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다섯 손가락처럼 서로 떨어지고 나뉜 채 아무 연관도 없이 각자의 삶,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뿌리는 하나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많은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도 하나의 몸통, 하나의 뿌리를 가진 한 생명체이듯."

 

예! 오인오색(五人五色), 5명이 제각각 서로의 색깔을 달리하지만 우리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우리는 ‘서로의 삶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책을 내지?’하였다가, 각자가 인문학적 시선에서 바라본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5인5색이라고 하였는데, 5인의 색깔은 어떠할까요? 신작가는 책머리에서 5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박정숙 박사는 한문학을 전공한 한글 서예가로 조선시대의 한글편지를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책을 냈다. 그것을 토대로 여기서는 편지글이라는 진솔하고 인간적인 양식을 통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삶을 인문적으로 더듬었다. 박희채 박사는 마음디자인학교 대표이사로 일하는 인문학자다. 주로 고전의 시선을 통해 본 현재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이면서 칼럼니스트인 신아연 작가는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일상사를 맛깔난 글 솜씨와 통찰력으로 버무려 공감을 자아내고자 했다. 건축가 임창복 교수는 건축의 종합예술적 관점 가운데 인문적 측면을 중심으로 전문적 건축물이나 시대적 건축 형식, 일상적 공간을 살펴보았다."

 

그렇습니다. 5인은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삶을 글로 풀어냈습니다. 다들 자신의 직업적 시선이 담긴 글을 썼는데, 다만 저만 변호사의 시선이 들어간 글을 쓰지 못했네요. 아래에 제가 이번에 글을 내면서 느낀 소회를 올려봅니다.

 

"나는 2003년경부터 어디 새로운 곳을 가면 될 수 있는 대로 이를 글이나 사진으로 남겨두려고 하고 있다. 지나가버리면 그냥 시간 속에 흩어져버리는 추억을 글이나 사진으로 붙잡아두고픈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하나, 둘씩 써내려 간 글 이 제법 많이 쌓였다. 그 중에서 여인에 관한 글 8편을 골라 여기에 싣는다. 한 편은 명나라 석성의 아내에 대한 글이고, 나머지는 조선조 여인들에 대한 글이다.

 

서두에 내가 어디 새로운 곳을 가면 이를 기록으로 남겨둔다고 하였다. 그럼 과거의 여인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어디로 갔을까? 2편을 제외하고는 그녀들의 무덤을 찾았다. 그녀들의 무덤 앞에 서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녀들이 살던 시대로 날아가 그녀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2편에 나오는 여인, 즉 한확의 누이들과 석성의 아내의 무덤은 중국에 있다. 하여 한확의 누이들에 대해서는 한확의 무덤을 찾아, 그 앞에서 한확의 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리고 강남녀라고 부르는 석성의 아내는 강남구 청담동 청담공원에 세워진 홍순언과 강남녀 전설비(傳說碑)를 - 홍순언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이번에 8편의 글을 모아 고쳐쓰고 다듬으면서, 다시금 이 여인들을 만났다. 여인들을 만나면서 새삼 과거의 여인들의 슬픔과 한이 내 마음을 적셨다. 허난설헌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3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한, 조선에 태어난 한, 김성립의 아내가 된 한!’ 책이 나오면 다시금 여인들의 무덤을 찾아 책을 올리고 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이제 <다섯 손가락>은 우리들의 품을 떠났습니다. 5명이 나름대로 의미를 다지며 쓴 책을 강호의 독자들은 어떻게 맞아줄지... 자판기를 어루만지던 제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춥니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슬며시 눈을 감습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시공 속에서 내 책의 여인들과 소주 한 잔 나누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