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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일본 나라현에서 만난 백제의 향기

백제사와 함께 찾은 백제사공원, 백제우편국 등

[우리문화신문= 나라 이윤옥 기자] “구다라지(백제사, 百済寺)는 《일본서기》 죠메이왕(舒明天皇) 11년(639) 7월조에 이르길 ‘올해 대궁 및 대사를 조영하였다(今年大宮及び大寺を造作らしむ)'는 기록에서 보듯 백제대궁 및 백제대사의 전승지입니다. 백제대사의 구중탑은 고베신사(子部神社)의 나무를 베어 지었기에 신이 노해 탑과 금당(대웅전)이 불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뒤 이 절은 아스카(飛鳥)의 대관대사(大官大寺)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대안사(大安寺)로 바뀌었습니다. 구다라지가 황폐해진 뒤 홍인연간(弘仁年間, 810-824)에 홍법대사(弘法大師)가 이곳에 머물면서 3중탑을 건립하고 불상을 안치하였으며 범자못(梵字池)을 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나라현 기타가츠라기군 고료쵸(奈良県北葛城郡広陵町)에 있는 구다라지(百濟寺)의 연기(緣起)에 나와 있는 절의 유래 가운데 일부이다. 절 경내에 있는 3중탑은 가마쿠라(1185-1333) 시대 중기에 건립된 목탑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국가중요문화재이다.

 

어제(25일), 나라현에 있는 구다라지(百濟寺)를 가기 위해 오사카역을 출발하여 열차를 네번 갈아타고 2시간 만에 도착한 마츠자카(松塚) 역은 역무원이 없는 완행열차(가쿠에키, 역마다 서는 열차)의 무인역이었다. 역을 빠져나오니 바로 주택가로 이어졌는데 마침 정원 손질을 하던 어르신이 보여 구다라지(百濟寺)를 물으니 1차선 도로 쪽을 가리키며 걸어서 40분 정도 가면 나온다고 일러준다.

 

 

 

 

 

아뿔사! 전날에도 교토 기즈시에 있는 고마데라(高麗寺) 절터를 찾아 가느라 지쳐 다리에 온통 파스를 붙인 상태인데 구다라지(百濟寺)를 왕복 1시간 반 이상 걸어야한다니 아득했다. 혹시 콜택시를 부를 수 있을까 싶어 마을 입구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보니 그런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걷기로 하고 농로길 같은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드물게 승용차들이 오고 가기에 구다라지(百濟寺) 쪽으로 가는 승용차에 손을 들어 보았다. 운좋게 구다라지(百濟寺)를 잘 아는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차를 세워 필자를 태워 주었다. 차를 타자마자 구다라지(百濟寺)를 찾아 일부러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감동스러운 듯 이것저것을 묻는다.

 

“구다라지(百濟寺)가 있는 동네는 구다라지(百濟寺)공원이 있고, 구다라(百濟) 간이 우체국도 있습니다. 그 동네 집주소가 모두 구다라(百濟)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백제와 이곳은 고대에 교류가 많았던 곳으로 생각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벌써 구다라지(百濟寺) 앞에 도착했다. 나그네를 위해 기꺼이 차를 태워준 아주머니에게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넨 뒤 바라보니 사진으로 보았던 국가중요문화재인 구다라지(百濟寺) 3중탑이 눈앞에 버티고 서있다. 가마쿠라 중기의 목탑이라면 800년은 된 탑이다.

 

 

 

구다라지(百濟寺)의 역사는 《일본서기》의 기록대로라면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죠메이왕(舒明天皇)은 639년에 이곳에 백제대사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당시 일본 조정은 백제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던 때로 죠메이왕은 백제천 주변에 백제대궁과 구다라대사(百済大寺)를 짓고 9중탑을 세우라고 명하였으나 이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그 뒤 코교쿠왕(皇極天皇) 때 완성을 보았다. 이후 구다라대사(百済大寺)는 673년에 다케치군(高市郡)으로 이전하여 다케치대사(高市大寺)로 이름을 바꾼다. 677년에는 다시 이름을 다이칸대사(大官大寺)로 바꾸었고 최종적으로는 나라로 옮겨 다이안지(大安寺)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이를 정리하면 구다라대사(百済大寺)→다케치대사(高市大寺)→다이칸대사(大官大寺)→다이안지(大安寺)의 계보로 이어진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구다라지(百濟寺)는 구다라대사(百済大寺)가 있던 터에 그 이름을 버리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아쉽게도 현재의 구다라지(百濟寺)는 가마쿠라 시대의 3중탑과, 홍법대사가 팠다는 범자(梵字)모양의 연못과 본당(대웅전)만 남아있는 상태로 퇴락해 있다.

 

구다라지(百濟寺) 경내에는 백제공민관(百濟公民官)이 있기에 절에 관해 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문을 두드리니 마침 1년에 한번 공민관의 결산 모임이 있는 날이라 회의 중이라며 구다라미나미구쵸(百濟南區長)인 나카야마 요시아키(中山義昭, 65살) 씨가 나와서 친절히 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장(區長)의 말로는 현재 구다라지(百濟寺)에 상주하는 스님이 없는 상태이며 절의 관리는 절 경내에 공존하는 가스카와카미야진쟈(春日若宮神社)에서 맡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전해준 구다라지(百濟寺) 절 안내문에는 5구의 불상 사진이 있었는데 특히 대웅전에 모셔놓았던 16세기 불상인 마두관음입상(馬頭觀音立像)을 도난당했다고 했다. 관리가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일본에는 백제사라는 이름의 절이 5군데 있다. 그 가운데는 시가현의 백제사(햐쿠사이지)처럼 천년고찰이 있는가 하면 오사카부의 백제사(구다라지)처럼 절터로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 (아래 참조)

 

 

구다라지(百濟寺)를 둘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구다라지(百濟寺) 공원을 거닐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화창했다. 공원을 거닐다가 공원 끝자락 도로변에 있는 백제간이우체국도 들어가 보았다. 그런가하면 절 주변 주택가를 거닐면서 문패를 보니 주소 속에 百濟(백제)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말 그대로 이곳은 백제땅이었다. 일본의 34대 왕인 죠메이왕(舒明天皇, 재위 629-641)은 백제궁(百済宮)에서 641년 11월 17일 숨졌다고 사서(史書)는 기록하고 있다. 일본왕이 일본궁전이 아닌 백제궁에서 숨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울러 백제대사(百濟大寺)에서 왕실에 불법(佛法)을 전하며 고대 백제와 일본 왕실의 교류를 이어가던 승려들은 누구였을까? 다음 기회에 이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구다라지(百濟寺) 안내>

주소 : 奈良県 北葛城郡 広陵町 大字百済 1168

관리소: 0745-55-1001

가는 길: 일본 위키피디어에는 긴테츠오사카선(近鉄大阪線) 마츠즈카역(松塚駅)에서 걸어 30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마츠즈카역은 무인역일뿐더러 택시 등 교통수단이 전혀 없다. 따라서 초행자는 야마토다카다 역(大和高田)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