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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정조가 보낸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통의 비밀편지

경기도박물관, 경기천년 기념 특별전 《푸른 산속 의리주인, 심환지》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경기도박물관(관장 박희주)은 오는 1월 27일까지 <푸른 산속 의리주인, 심환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조선시대 정조 시기의 인물인 만포(晩圃) 심환지(沈煥之, 1730-1802)는 노론 벽파의 영수였으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대부였다.

 

 

 

이번 전시는 2004년 청송심씨 안효공파 온양공손 응교공파의 후손인 심천보 님의 기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당시 <심환지 초상화>를 포함한 약 500점의 소중한 유물을 기증받으면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들을 연구하고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는 학파가 정파가 되고 붕당을 이루어 정책을 논쟁하는 사회였다. 노론 벽파도 그런 정파 중 하나였다. 반(反) 사도세자의 세력이자 지금으로 말하면 야당에 속하였다. 그들은 빈한한 삶 속에서도 임금에게 자신의 의견을 올곧게 피력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었다. 또한 정조도 이들의 정신을 높이 사 벽파와 시파를 모두 아우르는 자신만의 탕평 정책을 추진하였다.

 

전시는 크게 5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1부 ‘생애와 정치역정’ 심환지는 늦은 나이인 42살에 문과에 급제하고, 51세에 용인 정자평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비로소 58살이 되는 시점에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형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 주요 요직을 거친다. 그리고 69살이 되는 해 우의정에 임명된 후 좌의정과 영의정까지 오른다. 그의 호인 만포(晩圃)처럼 늦은 농사를 짓는 학자라 할 수 있다.

 

 

 

 

2부 ‘노론청류 심환지, 교유와 문학’은 문인으로서 이서구, 김종수, 윤시동, 조진관 등과 편지를 통해 교유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친필 원고인 《벽산여고》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33살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의 작품들과 용인 정자평에 은거하며 지은 시들은 그 문학적 가치가 높다. 당대 문학에 대해 평가한 김종수는 그를 “젊어서부터 백발이 되도록 문장에 힘 쓴 사람”이라고 하였다.

 

3부 ‘정조의 심복, 어찰을 받다’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 통의 비밀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796년 8월부터 1800년 6까지 약 4년 동안 보낸 어찰인데 《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일치하는 내용이 많아 편지를 통해 막후에서 정치를 조정한 이들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 있다.

 

또한 1800년 6월 15일 정조가 죽기 직전까지 임금의 병증이 위중함을 알리는 편지도 확인되었는데, 그간 정조 피살설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조어찰은 각각 대립되는 입장을 가진 정파를 포용해 국정을 운영하려던 정조의 사전 의견 조율 작업이자 중요한 정국 운영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4부 ‘서화수장가로서 심환지’ 조선 후기 문인들의 유행 중 하나는 중국과 조선의 명필 글씨와 유명화가의 그림을 수장하는 풍조였다. 서화 향유자로서 예술계를 이끈 또 다른 부류인 서화수장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이중 심환지도 마찬가지로 김상숙의 글씨, 김윤겸의 그림, 겸재 정선과 표암 강세황의 그림을 수집하고 제화시를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가 수장했던 서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5부 ‘사대부 심환지의 유산’ 심환지는 1802년(순조2) 10월 18일 풍위(風痿, 풍으로 생긴 저림증)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생전에 심환지에 대해 “벼슬길이 통하고 막히는 가운데 10년 동안 불우하게 지냈어도 굳게 참으며 궁색한 생활을 견뎌냈고, 요직에 올랐을 때도 포의 때의 옛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고 노론 벽파로서 그의 삶을 잘 표현하였다. 심환지가 세상을 떠나자 순조는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번 전시를 통해 경기도의 사대부 문화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