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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두 끼를 굶어 집행유예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주취감경 얘기하다보니 꼭 감경해주어야겠는데 술도 먹일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던 사건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할 때인데,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올라온 사건입니다. 강도가 상해까지 입혔는데 무슨 봐줄 것이 있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명만 강도상해로 거창하지 실제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사건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잃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데 하는 것마다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 학비며 병원비며 나가야 할 돈은 많습니다. 그래서 방문판매를 시작합니다. 사건 당일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해보나 별 성과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 00원의 돈이 필요한데……. 한숨을 푹푹 쉬며 어느 아파트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준 안주인에게 상품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앞이 캄캄해오는 피고인의 눈에 피해자의 손가방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피고인은 순간적으로 가방으로 손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지하려는 피해자를 뿌리치다가 피해자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혔고요.

 

도둑이 체포를 면하려고 폭행을 하면 이를 준강도라고 하여 강도와 같은 형을 적용받습니다. 이 피고인이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히면, 아무리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고 하더라도 상해는 상해이니까 준강도상해가 되는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법정형이 7년 이상이 됩니다.

 

1심 재판부는 작량감경하여(정상참작) 최소한의 형인 3년6월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런데 3년6월이 법적으로 최소한의 형이라고 하더라도, 별 전과도 없이 착실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이 정도 범죄로 3년6월을 산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가족들과 주위 친지, 지인들이 성실했던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역시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법적으로는 다른 감경사유가 없는 한 3년6월이 최하한의 형이고, 또한 집행유예도 할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는 최고 3년의 징역형까지만 형 집행의 유예가 가능하니까요.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어깨가 축 쳐진 피고인을 보니 참 안 됐더라고요. 이 피고인의 형을 감경하려면 다른 감경사유를 찾아야 하는데, 범행 일시가 밤이라면 어떻게든 피고인에게 술을 먹여 주취감경이라도 할 텐데, 대낮에 근무 중이라 도대체 술을 먹일 건덕지도 없고…….

 

그런데 재판장님께서 주심판사인 저에게 어떻게든 한 번 더 감경하여 피고인을 집행유예로 가정에 돌려보내자고 하시더군요. 저도 피고인과 피고인의 가족에 대해 딱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사유를 들어 감경을 하였겠습니까?

 

고심을 하며 기록을 살펴보던 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아침은 물론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전날도 제대로 못 먹었던 같은데, 그것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피고인이 그만큼 궁박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이 너무 굶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하였다고 하여 한 번 더 감경하고,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사유라 검사가 법리오해가 있다며 대법원에 상고하면 당장 파기될 판결이지만, 당시 공판검사도 피고인을 딱하게 여기고 저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상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3년6월의 형을 살 각오를 하고 있던 피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저희 판결에 거듭 거듭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고요.

 

판사가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뭐라 나무라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때론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