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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 후기 숙박시설 주막(술막) 이야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8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요즘이야 어디를 가도 머물고 잠을 잘 수 있는 숙박시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 조선시대만 해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역시 잠을 잘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나라 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역마와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로 역(驛)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퇴계원, 혜음원, 인덕원, 다락원 따위 원(院)은 땔나무나 마실 물 밖에 줄 수 없는 열악한 곳이었지요. 침구는 물론 장과 소금에 절여 말린 청어도 갖고 다녀야 했고, 심지어 가지고 간 쌀로 밥도 지었으며, 불을 밝히기 위한 관솔도 갖고 다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18세기 무렵이 되면 교통 요충지 큰길가나 나루터 주변, 산기슭에 주막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막은 잠자리와 식사, 말먹이만을 해결할 수 있었고, 오직 흙바닥에 자리를 깔아 놓은 채 대개는 여러 명이 한 방에서 뒤엉켜 자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주막에 드는 사람들의 짐보따리에는 옷은 물론 세면도구, 비상식량에 요와 이불까지 함께 들어 있을 정도였지요.

 

조선 시대의 주막(酒幕)은 ‘술막’이라고도 했는데, 잠자리는 제공하지 않고 식사만 내놓는 간이 주막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8세기 김홍도나 김득신이 그린 풍속화를 보면 길가 밥집에서 주모가 부뚜막에 솥 하나를 걸어놓고 국밥을 파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주막에 간판이 있을 리 없고 술 거르는 용수를 높이 걸어놓거나 ‘주(酒)’ 자를 쓴 등을 걸어 그곳이 주막이라는 것을 알릴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디를 가나 깔끔한 숙소를 만날 수 있는 지금은 참으로 편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