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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말 머리에 뿔 나거든 오실라요?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의 민요 <이별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자유스런 장단위에 간결한 가락, 시김새를 넣어 느리게 부르고 있다는 점, 노랫말은 “이별이야 이별이야, 임과 날과 이별이야”처럼 짧으며 앞귀(句), 뒷귀 각 8 글자를 기본으로 넘나든다는 점, 예전에 바다 건너 중국을 가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에 마치 이별가조와 같은 배떠나기를 불렀다는 점,

“닻 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라는 노랫말에서 ‘달 뜨자 배 떠나니’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의미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속풀이에서는 이별가, 곧 정든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서 부르는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위에서는 경기민요의 이별가와 배떠나기에 관한 노래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이별이라고 한다면 심청가에서 아버지와 심청의 이별도 눈물겹지만,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이별을 하게 되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 대목에서는 어떻게 그 감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상황은 이 도령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춘향 집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두 남녀의 대화 내용이 또한 구구절절하다. 헤어지게 된 춘향이가 서울로 떠나게 될 도령과 영영 이별의 자리가 될 것 같아 다짐을 두기 위해 먼저 입을 연다. <늦은 중모리>장단에 얹어 부르는 춘향의 절규는 차라리 비통에 가깝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그 대목을 소개한다.

 

 

<늦은 중모리> 춘향모친 건너간 이후로 춘향과 도련님 단둘이 앉어 일절 통곡 애원성은 단장곡을 섞어 운다. 둘이 서로 마주 앉어, 보낼 일을 생각하고, 떠날 일을 생각허니 어안이 벙벙,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 없난 설움이 간장으로 솟아난다. 경경열열허여 크게 울든 못 허고 속으로 느끼난 듸, 춘향이가 먼저 입을 연다.

 

“아이고 도련님, 날 볼 날이 몇 날이며 날 볼 밤이 몇 밤이요? 도련님은 올라가면 명문 귀족 재상가의 요조숙녀 정실 얻고”, <중략>

“아이고 내 팔자야, 이팔청춘, 젊은 년이 낭군 이별이 웬 일인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 와요?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시랴요? 동서남북 너른 바다 육지가 되거든 오시랴요? 마두각(馬頭角)허거든 오실라요? 오두백(烏頭白)허거든 오실라요? 운종룡(雲從龍) 풍종호(風從虎)라, 용 가는 듸 구름가고, 범 가는 듸 바람이 가니, 금일 송군(送君) 님 가신 곳에 백년 소첩, 나도 가지,”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된다거나, 바다가 육지로 변한다든가, 말(馬) 머리에 뿔이 난다거나, 까마귀 머리가 희어진다는 것은 모두 불가능한 조건들이다. 다시 만난다는 자체가 믿기 어렵다는 뜻에서 당치 않은 사건들을 열거하며 이별을 슬퍼하는 대목이다. 이 도령이 대꾸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오직 마음 변하지 말고, 자기를 기다려 달라고 애원할 뿐이다. 이 도령의 변이다.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오(吳)나라 정부(征婦)라도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 있고, 홍루난간천리외의 관산 월야 높은 절행, 추월강산이 적막헌듸, 연을 캐고 상사허니 너와 나와 깊은 정은 상봉헐 날이 있을 테니 쇠끝같이 모진 마음 홍로라도 녹지를 말고 송죽같이 곧은 절행, 니가 나 오기만 기둘려라”

 

위 이 도령의 변 중에서 ‘오나라 정부’는 중국 전국시대에 월(越)나라와의 싸움터에 남편을 보낸 오나라의 아낙네를 가리키는 말로 차가운 강가에서 천리 밖의 소식을 서로 물으며 변방의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달 밝은 밤에 그리워하던 것처럼 쇠끝같이 모진 마음,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에도 녹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주문이다.

 

다음이 본격적인 이별 대목이다. 이 대목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도 재미있다. 다른 류파에서는 춘향이가 이별하기 위해 오리정(五里停)으로 나갔다고 하지만, 김세종제 춘향가에서는 그 정자에 나가지 않았다고 못을 박는다. 오리정은 손님을 보내는 정자라는 뜻으로 송객정(送客停)이라고도 불렀는데, 남원 동북쪽으로 5리쯤 떨어져 있는 곳에 역말을 갈아타는 곳이었다고 한다. 다음의 아니리(창이 아니라, 말로 대사를 처리하는 형태)를 들어 보면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 장소가 오리정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니리> “그 때으 춘향이가 오리정으로 이별을 나갔다고 허되,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행차 배향 시의 육방 관속이 오리정에 가 늘어 있는 듸, 체면 있는 춘향이가 서방 이별헌다 허고 오리정 삼로 네거리 길에 퍼버리고 앉어 울 리가 있겠느냐, 꼼짝달싹도 못 허고 담안에서 이별을 허는 듸,”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