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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배달말 으뜸학자 김수업 교수 1주기 기림굿 열려

어제(22), 경남과학기술대학 본관 2층 대강당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빗방울 김수업 스승님 그립습니다’ 이는 어제 (22일) 늦은 5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본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빗방울 김수업 선생 1주기 기림굿’ 자리에 내걸린 펼침막 글귀다. 이날 추모 기림굿 행사에는 평생 우리말 살려 쓰기를 몸소 실천하신 선생의 높은 학덕과 고귀한 인품을 기리고자 온나라에서 모인 사람들로 대강당이 가득차고 넘쳤다.

 

이날 추모 행사는 ‘학자요, 교육자이자 우리말과 지역문화 살림이로 한 삶을 바친 참 스승 김수업 선생’을 기념하는 『빗방울 김수업, 새벽을 열어 길이 된 사람』(도서출판 피플파워)의 출판기념회와 함께 기림굿으로 이어졌다. 기림굿이 열린 대강당에는 화면 가득, 말끔한 양복 차림에 온화한 미소를 띤 선생의 모습이 행사 내내 추모객들과 함께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떨어지네 /하늘에서 땅으로 / 한없이 아래로만 떨어지네 / 곤두박질로 떨어지고서도 / 다시 / 올라가려 하지 않고 / 낮은 데로 낮은 데로만 찾아 / 손에 손잡고 하나 되어 / 내려만 가네 / 마침내 바다에 가서 / 모두 모여 / 한데 어우러져 / 더불어 울렁이며 춤추네 / 해님이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보더니 / 수증기 만들어 / 다시 불러 들어 올려주시네. - 빗방울, 김수업-

 

우리말을 사랑하는 학자답게 누구나 알기 쉬운 ‘빗방울’ 이란 호를 즐겨 쓰시던 김수업 선생은 스스로 ‘빗방울’이란 시를 지었다. 그리고 시처럼 낮은 곳에서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그들과 늘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어제 기림굿 추모 행사에서 선생이 지은 ‘빗방울’이 낭송되는 동안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의 가슴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단비처럼 빗방울 선생과의 인연을 떠올리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늦은 5시부터 시작된 기림굿은 여는 마당, 기림 마당, 풀이 마당, 닫는 마당 순서로 이어졌으며 한국차문화역사관 백로원 원장의 차 올림(헌다)을 시작으로 차명희 선생의 살풀이춤에 이어 김중섭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의 여는 말이 있었다.

 

김중섭 이사장은 “오늘은 김수업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선생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기리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만들었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 큰 슬픔을 이길 수 없지만 자료가 사라지고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선생이 남긴 우리말 사랑의 큰 업적을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선생의 유업을 이어가는 일” 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림 마당에서는 조장희 선생의 사회로 박문희(마주이야기 어린이집 원장), 최인호(겨레말살리는이 세움이), 남성진(진주문화연구소장), 고안덕 (교사) 등이 무대에 올라 평소 김수업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최인호 선생은 “우리나라에 몇몇 국어사전이 있지만 배달말을 풀이한 제대로 된 배달말집(국어사전)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선생은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말집(사전)을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으셨다. 비록 말집의 마무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남은 우리들이 더욱 힘을 내어 겨레말을 살린 배달말집(국어사전)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김수업 선생의 1주기 기림굿에 참석한 조용자(53살, 서울 서초동) 씨는 『말꽃 타령』(2006), 『우리말은 서럽다』(2009) 등 김수업 선생의 책을 모두 빠짐없이 읽은 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금세기에 한 번 나올까 한 국어학자이자 우리말 사랑을 실천하신 김수업 선생의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자 서울에서 달려 내려왔습니다. 김수업 선생께서 25살 때 석사학위 논문을 한글로만 써서 지도교수가 심사를 거부했다는 일화를 들었을 때 ‘아 우리말을 사랑하는 국어학자가 여기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추모제에, 전국에서 선생의 인품과 학식을 흠모하는 분들이 대강당을 가득 메운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선생의 위대한 유업을 되새겨봅니다.”라고 했다.

 

 

 

2시간여 동안 이어진 ‘빗방울 김수업 선생 1주기 기림굿’은 제자, 학자, 독자, 지인, 가족, 유지 등등 평소 김수업 선생과 인연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선생의 유업을 기리고 추모하는 뜨거운 자리였다. 기자 역시 2014년부터 겨레말살리는모임의 인연으로 김수업 선생의 우리말 사랑에 함께 할 수 있어 보람차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날 추모제를 함께했다.

 

단체 속닥방(카톡방)에서 문자를 올리실 때는 언제나 깜찍한 ‘빗방울’ 이모티콘을 달아 주시던 선생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이제 더 볼 수 없지만 늘 단비 같은 ‘빗방울’로 메마른 우리 가슴을 적셔주던 선생의 유업을 기리는 우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생의 명복을 빌었다.

 

【김수업 선생은 누구인가?】

 

김수업 선생은 1939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선생은 우리말의 올바른 활용과 보급을 위해 전국국어교사모임 우리말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우리말교육대학원장,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또한 지역문화 보전에도 관심을 가져 진주오광대보존회와 삼광문화연구재단, 진주문화연구소 등을 이끌었으며, 우리문화신문과 울력다짐(업무협약)을 맺은 (사)토박이말바라기 으뜸빛(이사장)으로 일했다. 또 몇 해 전부터는 겨레말을 살린 국어사전을 펴내겠다는 올곧은 뜻으로 제자들과 함께 정성을 쏟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