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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95년 전 오늘 대한통의부총사령관 신팔균 순국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1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95년 전 독립운동가 신팔균(申八均) 선생이 순국한 날입니다. 선생은 1902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강계진위대(江界鎭衛隊)에 근무하였는데 그해 8월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당하자 통분하여, 항일구국군을 조직하기로 결심하고 낙향하였습니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ㆍ이원식(李元植) 등 80여 명의 동지와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 활동을 하였지요. 1910년 일제에게 주권이 강탈당하자 만주로 망명하여 동지 규합에 나섰고, 1918년에는 김동삼 등 38명의 동지와 함께 3·1독립운동의 서막과도 같았던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에 서명했습니다.

 

 

또 1919년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관으로 지청천ㆍ김경천ㆍ오광선과 함께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습니다. 1922년 만주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단체가 통합되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는데 선생은 1924년 6월 21일 대한통의부 비상회의에서 군사위원장과 의용군 사령장을 겸임하게 되었으며, 이어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관으로서 일본군과의 수십차 교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지요.

 

1924년 7월 2일 독립군의 훈련지인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 이도구(二道溝) 밀림 속에서 무관학교 생도와 독립군 합동군사훈련을 시키던 중, 일본군과 친일적 성향의 중국 군벌 장쭤린군 및 경찰대에 포위, 습격당해 전사하였는데 그때 부하들에게 정의의 죽음을 택하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