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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정암 선생을 빌어 세종 다시 생각하기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26 (사맛의 길)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소통] 정신은 정암 조광조로 이어져

 

세종의 정치는 민본(民本)의 생민정신으로 나타나 누구나 자기의 재능을 나타내 일의 보람을 통한 업 정신을 가진 생민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를 면하고, ‘곳곳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끊어져서 각기 생생하는 즐거움[生生之樂]을 이루도록 할 것’을 바라는 정치를 폈다. (《세종실록》5/7/3)

 

“노비는 비록 천민(賤民)이나 하늘이 낸 백성 곧 천민(天民)이 아닌 이가 없다.(《세종실록》26/윤7/24)는 세종의 생민 사상은 모든 사람은 다 같다는 ‘하늘 백성’ 정신으로 뒷받침 된다.

 

올해는 조선의 의로운 선비 한 사람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1482년 8월 10일 ~ 1519년 12월 20일)의 죽은 5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6월 18일 이를 기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유학의 현대화 작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여기서 세종의 삶 철학과 정암선생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궁금히 여길 것이다.

 

《정암집》 속의 세종 시대

 

조선조가 이어지는 동안 후대 여러 임금과 사대부들이 세종시대를 정치의 본보기로 삼았다. 조광조 선생은 그의 문집 《정암집》에서 세종에 대해 말한 바 있다.

 

▪ “세종대왕은 항상 근정전에 앉아 정성으로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로서 대신 황희와 허조는 관청의 근무를 마치고도 옷을 다 벗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임금이 불시에 부르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라고 합니다.(《정암집》 권3 「시독관 때의 진언」 8)

 

▪ “말년에 궁중에 (세종이) 불당을 지으려 하니 학사들은 집으로 돌아가 마침내 집현전은 빈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눈물을 흘리며 황희를 부르자 황희는 ‘제가 가서 회유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곧 그는 모든 학사들의 집을 찾아가서 돌아갈 것을 간청했습니다. 당시 성균관 학생들이 황희에게 책망하기를 ‘당신은 재상이 되어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가?’라고 할 때 그는 노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황희다운 모습입니다. 대신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므로 세종대의 정치는 오늘날에도 칭송되는 것입니다.” (《정암집》 권3 「참찬관 대의 진언」2)

 

▪ “세종 때에는 민호[무관 6품] 직위의 관리들도 청렴결백을 서로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집현전 학사로 있던 박팽년이 광주 지역에 밭을 샀을 때 그의 친구가 말하기를 ‘공직 급여로 경작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게 밭을 사서 무엇을 하려는가?’라고 하니 곧 팔아버렸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도 당시 선비들의 습성이 어떠했던가를 알만 합니다.”(《정암집》 권3 「참찬관 대의 진언」112)

 

《정암집》에 나와 있는 세종 시대의 이야기인데 세종의 정치는 세종 이후에도 여러 임금에게서도 정치의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성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에게 수많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서울 프레스 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정암 서세 500주년추모사를 읽고 있는 필자.)

 

현대 속의 유학 정신 토론회

 

 

지난 6월 18일 토론회에서는 정암 선생 죽은 뒤 500주년을 추모하며,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용인 수지 심곡서원에서 종종 토론을 해오던 사람들이 한글과 한류문화 그리고 유학 정신의 현대화에 따른 논어의 스마트화 그리고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의 주제로 논의를 했다. 이날 세종의 정신을 따르고자 한 정암선생 추모사를 겸한 토론회 개최 인사에서 나는 다음을 강조했다.

 

우리 정신문화 드러내기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선진국사회에 몇몇 분야에서 선진국에 진입해 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곧 한류로 표상되는 방탄소년단이 ‘젊은이들의 꿈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라.’ 하여 세계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한국영화 100돌인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지구촌의 공통분모인 ‘빈부격차’를 향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FIFA20 축구에서 이강인 선수는 원팀에 생각하는 축구를 선보여 주었습니다.

 

곧 우리 젊은이들의 꿈에 대한 자기 이야기, 그리고 우리사회 빈부 격차에 대한 현실 증언, 스포츠에 생각을 입히는 등 우리의 현재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세계에 통하는 세계적 기준의 보편적 사회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때 어떻게 하면 더욱 선진 문화사회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옛 우리 정신에서 지금의 현실을 냉철하게 다시 보는 지혜를 배우고, 이를 몸으로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암 조광조 선생의 참선비 정신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것입니다.“

 

 

백성의 삶을 생각했고, 악습을 타파하고, 젊은이의 참정신을 북돋고, 부조리를 몸으로 부닥치며 씻어내려다 오히려 희생당한, 실천적 정치에서 순직 아니, 유교의 의로움으로 순교한 정암 선생은 세종을 높이 흠모했다. 세종이 늘 강조했던 사맛 정신을 정암선생은 몸으로 실천하다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정암 선생을 빌어 세종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정신은 세계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그럴수록 새로운 시대정신을 우리 옛 문화와 사상에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밖으로 세계와 호흡하고 안으로 우리 정신문화를 새롭게 찾아 현실에 적응시켜야 한다. 한국적이어야 세계와 더 잘 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