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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연기조사가 창건한 산청 방장산 대원사(大源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명산으로 지리산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지리산은  그 높이가 1,915m의  천왕봉을 최고봉으로 제석봉 촟대봉 명선봉 반야봉 토끼봉 삼도봉 노고단 등 1,700m를 넘는 봉우리들이 솟아있으나, 설악산과는 달리 바위들이 솟아나 보이지 않고 온통 숲으로 쌓여있어 품이 넓어 누구나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품이 넓은 지리산에는 그냥 들어가도 얼마든지 살수 있는 어머니 같은 산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리산은 산의 넓이가 넓어 많은 골짜기가 있으며 곳곳에 한국인의 숨결이 배어있는 산으로, 예부터 신성시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그 이름도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방장산(方丈山)으로도 불린다.

 

지리산은 지리적으로는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등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다 설악산을 지나 강원도 태백산을 기점으로 남서쪽으로 꺾여서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한국 남쪽의 중간에 높고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에 걸쳐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의 주변으로는 골짜기마다 많은 큰 절들이 있었으며 지금도 큰 절들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지리산의 주변에 지금 자리하고 있는 명찰들을 살펴보면 전북에는 실상사 전남지역에는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경남지역에는 쌍계사, 칠불사, 벽송사, 대원사, 법계사 내원사 등 명찰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그 많은 지리산의 명찰 중 경남 산청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대원사를 찾아보았다.  산청 대원사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동쪽에 있다. 이 대원사의 창건은 신라 진흥왕 9년(548)으로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뒤 얼마 안되어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연기조사는 지리산  남쪽에 화엄사를 비롯한 많은 절들을 창건한 고승으로 한국 화엄종의 시조로 기록된 스님이다. 

 

그러나 이후 이절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있고, 언제인지 절이 쇠락하여 빈터로 남은 터에 조선 숙종 11년(1685)에 운권스님이 다시 절을 짓고, 대원암을 중창 하였다. 이후 200년을 흘러 고종 27녀(1890)에 구봉스님이 절안의 건물들을 보수하고 중창하여 그 이름을 대원사로 고쳤다.

 

그러나, 이후로도 지리산 대원사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수난속에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버티어 왔다. 그 가장 큰 고초로는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난 뒤인 1948년 여순사건에 의하여 정부군의 부당한 명령을 따룰 수 없다고 군복을 벗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군인들과 이를 토벌의 대상으로 정한 정부군 사이에서 당한 갈등이었다. 당시 대원사는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정부군들의 본거지가 되었고,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파견된 정부군에 의하여 그동안 중창했던 절 내 모든 전각들이 타버리고 말았다. 그가운데 남은 것은 돌로 된 다층석탑만이 덩그렇게 남은채 방치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황량하던 대원사터는 1955년 지리산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만허당 법일(法一)(1904~1991) 스님이 들어오면서 다시 오늘의 모습으로 하나 하나 중건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법일스님은 비구니임에도 일심전력으로 포교에 앞장서고 절의 중창불사를 펼쳤으며, 폐허같았던 대원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해갔다. 그는 전각들을 지음과 동시에 한국 내 비구니스님들의 교육장으로 탈바꿈시키고 대원사를 비구니스님들의 참선수행도량으로 새롭게 가꾸었다.

 

 

이런 역사의 대원사에는 오래된 자취들이 별로 없으나, 현재 국가로 부터 지정 받은 보물로는 자장율사가 조성한 것으로 전하는 붉은 색 화강암 다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청나라 강희제 당시에 조성된 청동제 반자(징과 같은 형태의 불교악기)와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신중도 탱화가 경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는 인공이 아닌 것으로 대원사가 있는 자연계곡인 유평계곡이 경남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랜 역사지만 그동안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고 보니, 이제는 그 전란 중에도 타지 않은 석탑만이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모진 전란 중에도 불교용 악기인 '반자'와 '신중탱화인 신중도'나마 옛 역사의 부분이나마 알 수 있어 아쉬움 중에도 마음을 달래준다.

 

 많은 고개를 넘고 강을 지나 다다른 대원사 입구에 이르면 대원사계곡에 이르고 이곳 일주문부터 사찰에 이르는 거리는 약 2km로  이곳 계곡에는 귀한 고산식물과 계곡물에 깎여 생겨난 기암괴석이 많이 있기도 하다.  대원사 경내로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구간 마다에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산수를 즐길 수 있는 절경마다 많은 정자들도 있어 풍류를 즐길 수 있다. 대원사가 있는 대원사계곡에는 물이 굽이치는 곳곳마다 많은 전설이 있는데, 용이 살다 승천했다는 용소,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소를 먹였다는 소막골, 전란시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도장굴 등의 이름이 전하는 역사적 명소들이 있다.

 

이제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이지만, 대원사 계곡에는 지리산 천왕봉으로부터 흘러내린 시원함 물이 흘러내려 더운줄 모르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스님들의 수행처로 고요한 산사의 정이 가득하다.  요즈음에는 조용한 수행처에 산사의 체험객들이 템플스테이로 많은 도시사람들이 찾고 있어 자신을 깨치는 기회를 갖는 곳이 되었다. 대원사 앞산 기슭에는 현대 한국의 고승으로 이름높은 성철스님이 올라 좌선했던 성철스님 좌선대인 바위도 있다. 이곳에 올라보면 대원사의 경내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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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