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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 연극으로 만나다

원영애의 연극 “달의 목소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 연극을 보러 세실극장으로 나들이 갔습니다. 연극 제목은 <달의 목소리>로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리는 정정화 선생의 삶을 연극으로 꾸민 것입니다. 연극이 시작되니 배우 원영애가 무대로 나옵니다. 원영애는 정정화의 자서전 《녹두꽃》을 읽고 정정화에 꽂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연극으로 사람들에게 독립운동가 정정화를 알리는데 자기 연극 일생을 바쳐오고 있습니다. 해설자로 관객들과 소통하던 원영애는 곧 정정화가 되어 극중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다시 해설자로 돌아오고, 다시 극중 세계로 뛰어들고... 상대하는 배우들은 언제 나오나 했더니, 결국 연극은 배우 원영애가 혼자 이끌어가네요.

 

 

참!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1901~1991)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군요. 1919년 시아버지 김가진(1846~1922)과 남편 김의환(1900~1964)이 자신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비밀리에 상해로 망명하자, 다음 해 1월 정정화도 뒤따라 상해로 망명합니다. 시아버지 동농 김가진은 구한말 농상공부 대신, 법무대신 등을 역임했는데, 한일합방 후 일제는 동농을 회유하기 위해 남작의 작위를 줍니다. 그러나 동농은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동단에 가입하여 총재로 추대되고, 그 해 10월 아들 김의환과 함께 상해로 망명하는 것이지요.

 

그 동안 일제는 조선의 대신들이 한일합방을 원했던 것이라고 선전해왔는데, 조선의 대신이었으며 합방 후에는 남작의 지위에 있던 동농이 상해로 망명했으니 얼마나 당황하였겠습니까? 그리하여 일제는 상해로 밀정을 보내 동농을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대동단은 의친왕 이강도 망명시키려고 의친왕을 안동역(중국 단동역)까지 잘 모시고 왔다가, 안동역을 포위하고 있던 일경에 체포되면서 의친왕의 망명은 아깝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정정화는 임정의 안주인이었습니다. 임정요인치고 정정화가 차려준 밥을 먹지 않은 분들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임정의 가재도구에 정정화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정정화는 단순히 임정의 안살림만 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하였습니다.

 

세 번 째 잠입할 때는 압록강을 건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종로경찰서로 압송되어 일제의 개 김태식에게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일경은 정정화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풀어주지요. 정정화는 김태식에게 또 한 번의 고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방 후의 공간에서입니다.

 

정정화는 6. 25 때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인공 치하의 서울에 남겨졌습니다. 이 때 남편 김의환은 납북되는데, 정정화는 남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가, 나중에 일제의 개에서 반공 경찰로 변신한 김태식에게 걸려들었던 것입니다. 정정화로 분한 원영애가 김태식의 얼굴을 알아보고 처절하게 부르짖을 때는 제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더군요. 정정화는 이때의 심정을 회고록 장강일기(녹두꽃 개정판)에 이렇게 시로 적고 있습니다.

 

아직껏 고생 남아 옥에 갇힌 몸 되니

늙은 몸 쇠약하여 목숨 겨우 붙었구나

혁명 위해 살아온 반평생 길인데

오늘날 이 굴욕이 과연 그 보답인가

국토는 두 쪽 나고 사상은 갈렸으니

옥과 돌이 서로 섞여 제가 옳다 나서는구나.

철창과 마룻바닥 햇빛 한 점 없는데

음산한 공기 스며들어 악취를 뿜는구나.​

 

하루 두 끼가 한줌의 보리며

일어서고 앉음이 호령 한마디에 달렸네.

깊은 밤 찬 바람에 마루에 누웠는데

가을이 늦었어도 걸친 건 모시옷뿐.

우리들의 소행이 우습기만 하나니

입 벌리면 사람에게 욕이니 퍼붓네.

손들어 하는 짓은 채찍질이 고작이니

나하고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단 말인가.

 

배우 원영애는 이 대목이 가장 가슴에 아팠던 모양입니다. 다시 해설자로 돌아온 원영애는 평생을 대한 독립을 위해 바친 정정화가 이렇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에게 과연 정의가 있기는 있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렇지요. 해방 후에 반민특위는 좌절되고 친일파는 여전히 이 나라의 지도자입네 하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볼 때에, 또 재빠르게 변신한 일제의 개들에게 독립투사들이 또다시 고문당하는 것을 볼 때에 누구나 가슴 치며 이런 의문을 가질 법합니다.

 

 

연극이 끝나고서도 원영애는 아직 정정화의 아픔에서 깨어나지 못하는지, 한동안 얼굴 가득 슬픔을 머금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연극을 통하여 정정화 선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배우 원영애가 참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저도 책을 통하여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정정화 선생을 만나본 듯이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독립투사 정정화 선생님! 그곳 하늘나라에서는 강제로 헤어져야만 했던 남편 김의환 선생과 해후하셨겠지요? 이생에서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행복을 그곳에서나마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