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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두창신을 표현한 ‘곰보벅수’

전염병이 돌면 마을 들머리에 '벅수'(서낭)를 세워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0]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박석(薄色)거리',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돌림병의 하나인 '두창(痘瘡, 천연두)을 좋지 않은 귀신 때문에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두창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두창'이라는 '유행병'(돌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금기사항을 꼭 지켜야만 하였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금기사항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며, 제사도 지내지 말고, 남의 집 잔치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를 맺지 말고, 서로를 접촉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금기를 어기면 살아남기 어려우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욕을 자주 하고, 정성을 드려 두창신에게 기도를 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

 

우리 조상들은, 두창신을 ‘호귀마마(胡鬼媽媽)’ 또는 '손님'으로 떠받들었으며, 마을의 들머리에 정성을 들여 두창벅수를 만들어 세우고, 이들 '손님'(두창)들이 우리 마을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벅수'를 세워서 두창을 차단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왕실에서도 돌림병으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하여 '여제(厲祭, 돌림병이 돌때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의식)‘라는 제사까지 지냈다.​

 

두창으로 목숨을 잃을 수 도 있지만 다행히 두창을 이겨낸다 하여도 얼굴에는 심각한 곰보자국을 남겼다. 이 곰보자국을 우리 조상들은 얽은 '얼굴'이란 뜻으로 '박색(薄色)‘이라 하였다. 이러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역병(疫病)으로 죽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역병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을 들머리에 정성들여 '벅수'(서낭)를 만들어 세우고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두창의 예방 접종은 조선 정조 때 다산 정약용에 의하여 처음으로 들여왔다. 이를 '인두종법(人痘種法)‘이라 하여 두창을 앓고 있는 사람의 '두즙(痘汁)’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붙여 넣는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위험한 방법 이었다. 그 이후 '우두종법(牛痘種法)‘도 정약용이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를 하였으며, '우두'가 개발되고 200여년이 지난 1979년에는 지구상에서 두창은 완벽하게 사라져 없어졌다. 이젠 곰보는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벅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