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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현재에도 시달리는 ‘쩐의 전쟁’ 왜관편

최근 수출규제로 불거진 한일 두 나라의 무역 갈등
뿌리 깊은 연원과 대책을 역사와 일기자료에서 찾아보다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쩐의 전쟁 : 왜관편”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를 펴냈다. 최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잇따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양국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구한말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고, 일본 돈이 통용되면서, 한반도의 자본은 침탈당하고 경제가 종속되었다. 일제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힘을 당했고, 계속해서 일본에 저항했던 우리의 과거는 누적된 역사관 갈등과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더 진화된 국제무역 문제로 현재진행중이다. 웹진 담(談) 9월호는 조선시대 일기자료에서 볼 수 있는 일본과의 무역과 대일관 등 자료들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고민해보고, 경제적 독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교류와 단절이 반복되어 온 한일관계

임진왜란 이후 국교를 회복하자 왜공으로 고초를 겪다

 

전근대시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통교와 침략, 통상과 약탈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통교와 통상이 단절되면 얼마 후에는 침략과 약탈이 일어났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기 전에도, 조선에서 머무르고 있던 일본인들의 소요가 문제가 되어 꽤 오래도록 조선과 일본은 교류를 단절해왔다. 이러한 교류 단절이 임진왜란의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두 나라의 관계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으며, 기나긴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종전 이후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己酉約條)를 맺으면서 다시 교류를 이어가게 된다.(1609, 광해군1) 조선은 주변 이민족(異民族)을 제어해야 했고, 일본은 이웃나라로부터 필요한 물산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선과 교류 재개에 경제적인 이유가 강했던 일본은 조선에게 좀 더 많은 것, 좀 더 품질이 좋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왜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의 백성들에게, 조선과 일본이 교류하기 위해 필요했던 물자인 왜공(倭供)을 충당하는 것은 매우 버거운 일이었다.

 

 

조선 중기 문인인 김령은 왜공을 마련하기 위해 겪는 백성들의 고초에 대한 동정과 왜공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에 대한 비판을 문중일기인 《계암일록(溪巖日錄)》에 기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일본의 재침략을 두려워하니 요구를 들어주기에 급급하다

 

당시 조선은 왜란으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된 일본과 교류를 맺어야 할 만큼 주변 이민족들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위협은 북쪽의 여진족들이었다. 조선의 변경 지역은 여진의 여러 부족들의 전장(戰場)이 되어버렸으며,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건주여진은 후금(後金)을 세우고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시 조선의 식자들은 일본의 재침을 두려워하였기에,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급급하였다. 그 결과 1627년 정묘호란을 겪은 조선에, 일본은 접대수준의 격상과 한양으로의 상경을 요구하였고, 그동안 조선에서 중단했던 공목(公木)까지 요구하게 된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직후 일본은 조선에게 통신사 파견과 인조의 어필을 요구한다.

 

조선은 남북으로 이민족들의 위협을 받고 있던 터라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 번의 호란을 겪은 조선을 상대로, 일본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명분까지도 받아내게 된다. 이웃나라들로부터 받은 위협은 그대로 백성들에게 고통으로 전달되었으니, 전쟁의 참화와 수탈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일본이 순도 낮은 은으로 부당하게 유통하려고 하자

조선은 일본에 대해 인삼교역 전면중단으로 맞서다

상대가 잘못 던진 공은 받지 않고 되받아쳐야

 

이후 점차 안정을 찾은 조선은 그동안 일본이 보였던 행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상거래에서의 부당거래・부당이득, 왜관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일본인의 각종 범위 행위, 조선에 대한 염탐 활동 등등이 그것이다. 영화 <조선명탐정2 : 사라진 놉의 딸>에서 볼 수 있는 왜관의 풍경과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승려들의 무리한 요구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기록에 근거한 창작이다. 두 영화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당시 조선은 일본의 행태에 제재를 가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특별한 화폐다. 은의 순도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던 일본에 조선은 인삼 수출을 거부했고,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조선과의 인삼무역을 위해 특별한 은을 주조하게 되었다. 인삼대왕고은이란 특별한 화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일본의 교란에 대해 조선 정부가 선택한 것이 순도가 낮은 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삼의 수출을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잘못 던진 공을 받지 않고 되받아쳐서 얻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한일 교역의 문제

반복되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역사 콘텐츠로 창작되길

 

조선과 일본의 통상교역에 대한 역사, 그 중심교역지였던 왜관에 대한 자료들은‘스토리테마파크’ 창작소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바탕으로 4,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호 웹진의 조경란 편집장은 “인조대와 숙종대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결국 위정자들의 대외 정보력과 분석력, 나라의 힘이 외교관계의 관건으로 보인다. 그 힘은 결국 백성들의 노고를 줄여주고 외부의 환란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면서, 한일교역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역사이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역사가 될 수 있도록 “한일교역과 관련된 창작소재들이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역사 콘텐츠로 창작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