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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초혼제 통해 전사자 신(神)으로 추대

일본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 3
[맛있는 일본 이야기 506]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 건립 이후 수많은 전사자를 합사(合祀)하는 예대제(例大祭, 레이다이사이: 신사의 신에게 고하는 의식)가 이뤄졌는데 이는 군대가 합사자를 결정하고 일왕의 재가를 받아서 혼을 불러내어 야스쿠니의 제신(諸神)으로 합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곧 군의 조사와 합사기준에 따라 판정→영새부(寧塞簿, 영혼이름을 적은 명부)작성→일왕보고→재가→초혼→합사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전사자는 유골이나 위패가 아닌 영새부(寧塞簿)에 기록되며 이를 신관들이 오하구루마(영새부를 태우는 영혼 가마)에 태워 야스쿠니 본전(本殿)에 자리하는 초혼제를 진행한다. 이후 합사제(合祀祭)를 거행하고 제주(祭主)인 일왕이 그 길을 걸으며 참배한다. 영새부는 사전에 안치되어 신체에 준하는 취급을 받으며 이로써 야스쿠니의 제신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때 만주, 대만, 조선, 오키나와와 일본 내에 살고 있는 유족들을 국비로 야스쿠니에 초대하여 전사자가 신(神)이 되는 과정 곧 예대제가 진행되는 참도(參道) 양쪽 끝에서 참배하게 한다. 이후 야스쿠니 예대제를 마친 유족들은 신주쿠교엔, 황궁, 우에노동물원 등 도쿄의 명소를 구경하고 귀향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사자의 영혼을 국가가 신으로 모시고 있음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초혼사(招魂社, 영혼만 모시는 곳)가 예전의 초혼장(招魂場, 무덤과 영혼을 동시에 모시는 것)과 달리 영혼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민속학회 회장을 역임한 츠쿠바대학의 미야타 노보루 (宮田登, 1936-2000) 교수는 ‘초혼사는 전사자를 신전(神殿)에 넣어버리고 영혼의 자유를 빼앗아 버리는 것으로 전통방법의 장례를 따르던 유족들에게는 익숙하지 못한 제사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전사자들은 장례 절차를 모두 6회에 걸쳐하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전사한 현지에서 임시로 부대장(部隊葬)이 진행되고 이어 주검이 소속연대에 도착하면 다시 한 번 부대장(部隊葬)을 실시한 뒤 주검을 유족에게 넘긴다.(주검이 수습된 경우) 그러면 유족들은 화장한 주검을 집에 안치하여 조문(通夜, 츠야라고해서 우리의 조문에 해당)을 받고, 다시 주검은 소학교 강당 또는 시정촌(市町村)에서 주최하는 공장(公葬, 공개적인 장례식)을 마친 뒤 육군묘지에 안장된다.

 

 

이후 2년이 지나야 비로소 야스쿠니에 합사되는 절차를 거행하게 된다. 이 초혼제를 끝으로 육신은 묘지로, 영혼은 야스쿠니에 합사됨으로서 모든 장례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전사자에게는 최고의 영광스런 무대에 오름을 뜻한다. 곧 야스쿠니의 초혼제를 통해 전사자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닌 영예로운 죽음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들을 잃어도 슬픔을 표출하기 보다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명예로 여기게 하는 이른바 ‘야스쿠니 신앙’은 당시 일본인의 삶과 죽음, 곧 사생관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초혼제와 함께 이뤄진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는 메이지 일왕 때 7회, 다이쇼 일왕 때 3회, 쇼와 일왕 때 20회의 참배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