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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오늘 추분, 창합풍이 분다는데

널려있던 것들 거둬들이고, 거문고 줄도 느슨하게 풀어주고
[솔바람과 송순주 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9월이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뜨겁던 여름 기운이 서늘한 가을 기운에 밀려 확실히 서늘하게 내려간 것은 물론 바람의 방향이 달라졌다. 옛날 동양에서는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 각각 이름을 붙이고 구분을 했단다. 이른바 팔풍(八風)이다. 일 년 365일은 대략 45일을 기준으로 철이 바뀐다고 보겠는데 입춘에는 북동풍이 분다고 보고 이를 조풍(條風)이라고 했고 45일 후인 춘분에는 동풍이 부는데 이를 명서풍(明庶風)이라고 불렀다.

 

춘분 후 45일이 지나면 입하가 되고 이때는 동남풍인 청명풍(淸明風)이 불어온다. 또 45일이 지나면 하지인데 이때는 마파람이라고 하는 경풍(景風)이 남쪽에서 불어온다. 다시 45일이 지나면 입추가 되니 이때는 서늘한 바람인 양풍(凉風)이 서남쪽에서 불어온다. 다시 45일이 지나면 추분이 되는데 이때는 창합풍(閶闔風)이 서쪽에서부터 불어온다고 했다. 창(閶)은 큰 문이고 합(闔)은 작은 문짝이니 아마도 이제는 찬바람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추분 이후 45일이 되는 입동에는 서북쪽에서부터 부주풍(不周風)이 불어오고 다시 45일 후인 동지에는 북쪽에서부터 광막풍(廣莫風)이 불어온다고 했다. 동지 후 45일은 입춘이니 이렇게 (문헌이나 지역에 따라서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 년에 8개의 큰 바람이 불어온다고 보았단다.

 

 

 

그렇다면 확실히 9월 하순, 추분이 끼어있는 요즈음에는 아침저녁 찬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창문을 받아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면 옛 사람들은 천지현상은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이를 정치에 응용을 해서, 조풍이 부는 입춘에는 경범자를 꺼내주고 구류자를 석방하며(일반 국민들을 위한 대사면을 한다는 뜻이라고 풀 수 있겠다), 춘분에 동풍이 불면 토지의 경계를 바르게 하고 논밭을 정비했다고 한다. 농사를 위한 준비를 갖춘다는 뜻이리라.

 

그러다가 입추에 서늘한 바람이 불면 땅의 덕에 감사하며 사방에 나가서 제사를 올린다. 다시 추분에 창합풍이 불면 내걸린 것을 거둬들이고 거문고 줄도 좀 느슨하게 풀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계절은 이제 밖에 널려있던 것들을 거둬들이고 사람들도 거문고의 팽팽했던 줄을 풀어주듯 더위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도 좀 풀고 음악도 듣고 책도 많이 볼 때라고 하겠다.

 

공기가 맑아지고 기온이 선선해지면 몸이 가벼워져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게 되고 또 밤에는 그만큼 잠이 덜 오고 머리가 맑아진다. 말하자면 요즈음은 ‘숙흥야매(夙興夜寐)’의 계절인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면서 부지런히 무엇인가 일을 할 수 있는 계절이라는 말이다. 이런 때에 선인들은 어떻게 했을까?

 

 

조선 중기의 뛰어난 학자이자 문신이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한 중봉(重峯) 조헌(趙憲)은 젊을 때에 집안이 가난하며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 이때에 소를 먹일 때에도 책을 놓은 적이 없었고 날마다 땔나무를 해와서 그 불에 비춰 책을 읽을 정도로 촌음을 아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퇴계에게 묻기를, “선생이 청량산(淸涼山) 절에 계실 때에, 아무리 캄캄한 밤중이라도 혼자 절 밖으로 나갈 때에 조금도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뜻이 없으셨으니,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안정되고 이치에 밝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이 일은 참으로 소년이었을 때 멋대로 행한 일이니, 비록 달리 두려운 것은 없었지만 유독 사나운 짐승에 대한 걱정도 없었겠는가.” 하였다.

 

퇴계 이황은 평소 잠자리와 독서하는 곳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고, 손님을 만나거나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지 않는 경우 외에는 늘 좌우에 사람이 없이 조용하게 지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혼자 완락재(玩樂齋)에서 자다가 한 밤중에 일어나 창을 열고 앉았더니, 달은 밝고 별은 희미한데 강산(江山)은 텅 비고 몹시 고요해서 천지가 나뉘기 전 상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단다.

 

 

또 말하기를, “게으르면 욕정(慾情)이 성하게 일어나서 편안히 쉬지 못하니, 오직 공경(恭敬)해야 심기(心氣)가 맑아지고 안정되어 편안하게 지내며 호흡을 고르게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편안히 쉴 때에도 게을리 하지 말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면 함께 공경의 이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공경(恭敬) 이란 말에서 공(恭)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몸을 낮추는 것이고, 경(敬)은 다른 사람의 지혜와 덕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을 높이 받들고 존경하면서 스스로는 낮추고 겸손해하는 마음과 자세로 학문을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지리산 자락에 살며 안동의 퇴계와 쌍벽을 다툰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지 저녁에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가 말하기를, “밤중에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있으니, 절대로 많이 자서는 안 된다.” 하였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전하는 이 같은 일화들은 이 계절이 얼마나 좋고 중요한 계절인가를 말해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숙흥야매(夙興夜寐)’의 계절만이 아니라 옛 사람들이 일 년 내내 몸을 게을리 두지 않고 열심히 깨어서 공부하고 실천하는 생활자세를 전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글이 바로 송(宋)나라 진백(陳栢)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라고 하는 잠언이다.

 

“닭이 울어 잠을 깨면, 이러저러한 생각이 점차로 일어나게 된다. 그 동안에 조용히 마음을 정돈해 보자!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기도 하고, 새로 깨달은 것을 생각해 내어, 차례로 조리를 세우며 분명하게 이해하여 두자. 근본이 세워졌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안색을 가다듬은 다음, 이 마음 이끌기를 마치 솟아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한다. 엄숙히 정제하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한 상태로 가질 것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잠언은 조선 명종 때 노수신(盧守愼)이 후학(後學)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상세하게 주석을 달아 해설했고 이어 퇴계가 선조에게 바친 《성학십도(聖學十圖)》라는 병풍에 맨 마지막 열 번 째로 도해를 해 놓고 이를 실천하도록 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 온다, 이 잠언은 이어서 아침에 자리를 세수를 하고 자리를 잘 잡은 뒤에 책을 펼쳐 성현들을 대하게 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와 증자가 앞뒤에 계실 것이므로 성현의 말씀을 경청하고, 제자들이 물어보고 답한 내용을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 잡으라는 공부비결을 알려준다.

 

다만 현대인들이 옛 사람들이 하듯 성리학에 깊이 파고들 이유는 없겠지만 요는 이 좋은 계절, 특히 공기도 맑고 머리도 깨끗해지는 아침저녁으로 좋은 음식만 먹고 비싼 술만 마시는데 허비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의 지혜와 삶의 지식을 늘이는데 전념하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밝게 보게 되고 그러한 깨우침으로 이웃과 사회를 밝고 맑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이 가르침에 특히 마지막에 강조하는 것은 독서하고 남은 틈에는 틈틈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성정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과 태도가 길러지면 남 앞에 나가서 거짓을 행할 수 없을 것이고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공부와 수양이 안 되니 정치가 늘 그렇게 엉망이 아니겠는가? 자기를 속인 그런 식으로 남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횡행하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