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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백제역사유적지역 내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백제 후기 미륵사가 있엇던 전북 익산시에는 백제말 옛 왕궁이 있었던 곳이 있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왕궁으로 불릴만한 곳이 없어서, 왕궁리의 지명자체가 매우 의아하다고 생각되었다. 왕궁터는 없는데 그 이름이 왕궁리이고 보니, 누구나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왕궁리에는 백제시대 양식의 전통이 살아있는 오층탑이 있었다. 절도 없는 곳에 탑만이 남아있어 이 또한 의아스러운 탑이었다.

 

탑이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탑이 있다는 것은 곧 절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고, 절이 있다는 것은 부처님을 모신 큰집이 있고, 그 앞에 부처님을 모시듯 탑을 세웠던 것인데, 왕궁리오층석탑은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에 이르기 까지 큰 손상없이 서있었던 이 오층석탑은 역사의 풍파를 견디며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었던 절의 이름도 잊어버려 그냥 마을의 이름을 따 왕궁리오층석탑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왕궁리에 왕궁은 찾을 수 없어서, 많은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궁금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기울어가던 왕궁리오층석탑을 1965년 해체복원하여 다시 세우고, 1998년에는 오층석탑의 주변을 깊이 파고 보니, 탑의 아래에서 옛 건물의 터가 발견되었고, 그 건물터가 바로 왕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굴조사결과 많은 학자들은 이곳이 백제말기에 무왕이 새로운 도성을 이전하기 위하여 왕궁을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왕궁도 도성도 백제가 멸망한뒤 없어지고, 그곳에 차츰 흙과 먼지가 덮여 평지가 된 곳에 누군지 절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확인 되었다. 이때는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왕궁리오층석탑의 형식과 미적 감각이 고려시대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왕궁리오층석탑의 주변에는 당시 건물의 주춧돌도 발견되어, 분명히 절터였음도 확인되었다. 지금은 왕궁터는 그대로 땅속에 묻혔고, 절의 건물들이 있었던 자리에도 옛 주춧돌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만 있으며, 무너지지 않고 서있던 왕궁리오층석탑만이 옛 모습 그대로 서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은 그 지리적 위치가 백제지역 이어서 그 미학적 체감과 형상이 신라지역의 석탑과 확실히 다르다. 왕궁리오층석탑은 국보 제289호이며, 그 주변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왕궁리오층석탑을 탐방하고 돌아서며 느낌은 왕궁의 옛 영화를 느낄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또한 왕궁의 터 위에 있으면서도 그 절의 이름도 전하지 않아 이 또한 큰 아쉬움이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왕궁리오층석탑이지만,  오히려 궁금증만 더한 백재지역 문화재였다.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