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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른 꽃 다 시들 때 국화 돌아오다

이 가을 마음을 나눌 손님이 필요함
[솔바람과 송순주 1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국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국화의 색이 눈을 포근하게 만져주는 계절이다. 국화의 꽃술이 우리 마음을 보드랍게 감싸주는 때다. 지난 월요일은 음력 9월9일, 중국인들이 중양절이라고 부르는, 우리에게는 잊힌 계절의 분수령이다.

 

중국인들은 9라는 숫자를 매우 중요시하고 좋아해서, 9가 두 번 겹치는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하여 일찌기 당나라 때부터 이 날을 축하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한가위를 풍성하게 즐기고는 3주 뒤쯤 되는 중양절은 지나치지만, 중국 사람들은 중양절인 9월 9일엔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일찍이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그의 제자였던 여남의 환경(桓景)에게 "9월 9일 자네의 집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 집안사람들에게 붉은 주머니에 수유(茱萸)를 넣어 어깨에 메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면 이 재난을 면할 것이다."라고 하자 환경이 그 말대로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과연 집안의 개, 돼지, 닭, 양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에 가슴에 수유 가지를 꽂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중양절을 별로 쇠지 않음으로 해서 이러한 중국인들의 유래도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중양절이 가까워지면서 차가운 공기를 타고 국화의 아름다움이 몸으로 다가오고 피부 속으로 파고든다. 화려한 색과 짙은 향기를 자랑하던 여름 꽃들이 다 시든 다음, 찬바람이 불 때 귀를 살짝 움츠러들게 할 즈음에야 꽃이 피고, 나중에 공기가 차가와 볼을 손으로 비빌 때까지 우리 옆에서 누님처럼 서 있는 그 꽃, 가을은 역시 국화가 있기에 더욱 좋은 계절이 된다.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하나는 늦게 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래가는 것이다. 향기로운 것도 그 중 한 가지이고, 아름다우나 요염하지 않고 깨끗하나 싸늘하지 않은 것이 그 나머지 하나다.” ......정약용, ‘국영시서(菊影詩序)’

 

 

원래부터 재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안두는 것이 선비답다고 하던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 같은 이도 실용적인 용도에 관해서는 눈을 돌리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안 그런 것 같다. 곧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성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天)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地)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은 군자의 덕을 가졌음이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氣像)을 뜻하고, 술잔에 동동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仙食)이라.” ......종회(鐘會) ‘국화부(菊花賦)’

 

요즈음에 우리에게도 국화차를 마시는 풍습이 들어왔지만 예전에 우리에게 국화는 먹는 대상, 마시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꽃일 뿐이었다. 그것은 이 국화에게 다른 어느 꽃에서도 볼 수 없는 지조가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그 연유가 된 것이 바로 몽고족인 원(元)에게 나라를 빼앗긴 남송(南宋)의 정사초(鄭思肖)가 난초를 그리면서도 매양 뿌리의 흙을 그리지 않아, 그 연유를 물은즉 땅을 적에게 빼앗겼는데 흙이 어디 있느냐고 해서 그 후 난초를 그릴 때에 뿌리가 드러나는 노근난(露根蘭)을 유행시킨 그 사람이 국화에 대해서 읊되,

 

가지 끝에서 향기를 품은 채 다할지라도          寧可枝頭抱香死

모진 북풍에도 땅에 떨어져 뒹구는 일 없다네  何曾吹落北風中

 

라며 죽을 때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선비의 지조를 대변한 이후 더욱 국화에 대해서는 감히 먹고 마시는 대상으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의 옛 사전인 《이아(爾雅)》에 “국화를 다른 말로 태장(苔薔)이라 하고 일정(日精)이라고 부른다. 또한 주영(周盈), 전연년(傳延年)이라고도 한다. 줄기가 붉고 맛이 감미로운 것을 골라 먹으면 능히 장수한다.”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중국 사람들은 애초부터 식용 또는 약용으로 고려했던 것 같은데 뭐 그것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가을은 역시 국화가 있기에 더욱 가을이고 그러기에 사람들은 더욱 자연과 계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리라.

 

한참 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황후화’를 본 사람들은 혹 눈치를 챘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원제목이 '만성진대황금갑(滿城盡帶黃金甲)', 곧 “온 성 안 모두가 황금갑옷 둘렀네.”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은 원래 당나라 말기를 뒤흔든 큰 반란인 '황소(黃巢)의 난'(875년~884년)을 일으킨 황소(黃巢)가 쓴 것으로서

 

가을 되어 9월 8일 기다려 왔노니               待到秋來九月八

내 꽃이 피면 다른 온갖 꽃은 시들지           我花開後百花殺

향기가 떼로 하늘 찌르고 장안에 스며들어  衝天香陣透長安

온 성 안 모두가 황금갑옷 둘렀네               滿城盡帶黃金甲

 

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제목이 되었다. 시에서 보듯 황소는 국화를 ‘내 꽃(我花)’이라고 해서 스스로를 국화로 비유했는데, 그 국화를 헐벗고 고생하는 민중으로 동일시하여, 민중들이 정부의 학정을 무너트리고 수도를 차지하는 꿈을 이 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 ‘황후화’는 실제로 황소의 난 때 이야기가 아니라 훨씬 뒤인 후당(後唐)의 장종(莊宗) 이존욱(李存勖)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데, 황소의 시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거대한 장안성을 묘사하고는 그 넓은 경내를 국화로 덮는 장관을 연출한다.

 

다만 황소가 쓴 위의 시를 보면 첫 귀가 9월 9일이 아니라 9월 8일로 되어있다. 그래 마치 9월 8일이 중국의 명절이 아닌가 오인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황소가 시를 지으면서 그 뒷 구절과 운(殺,甲)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팔(八)로 쓴 것이라는 설명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긴 이야기로 독자를 피곤하게 하는가? 필자의 생일이 음력으로 9월 8일인 때문이다. 황소의 시를 읽다가 9월 8일이 나와,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이런 가을과 국화에 관한 잡문을 길게 쓰게 된다.

 

아무튼 나는 황소와 같은 욕심도 없고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심고 맘에 맞는 손님이나 기다리는 도연명(陶淵明)을 부러워 할 뿐이다. 그의 시

 

국화는 내 마음 같아서 9월 9일에 피고            菊花如我心 九月九日開

손님들도 내 마음 아는가 중양절에 함께 오네  客人知我意 重陽一同來

 

가 말하는 대로 반가운 손님이나 기다리는 것이다.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해서 공기가 차가워지고 서리가 내려야 그 속에서 더 향기가 짙어지고 자태가 은은해진다.

 

“천 가지 풀이 다 시든 후에 마치 한가한 사람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듯”

千花萬卉消零後 如見閒人把一枝

 

라는 옛 구절 그대로 국화의 멋, 국화의 맛은 오늘같이 차가운 날씨가 되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안다.

 

다만 이제 유전자변형, 품종개량으로 가을에 피는 꽃들도 많아졌고 또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진짜보다도 더 멋지게 보이는 세상이 되어 예전처럼 다른 꽃이 없을 때에 홀로 피는 국화의 가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사람들도 예전처럼 국화를 즐겨 찾지는 않는다. 그 틈을 밀고 들어온 것이 각 지역에서 축제행사의 하나로 준비하는 국화전시회나 국화꽃동산이다.

 

전라도 어딘가에 넓은 벌판에 국화를 심어놓아 벌판이 온통 노랗게 물든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지나친 화려함이 국화꽃의 원래의 멋과 맛을 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요즈음 각종 행사들이 펼쳐지고 점점 요란해지고 번잡해지는 그 행사를 위해 여러 수 만 수십 만 무리 속에서 서 있어야 하는 국화들이 애처로워 보인다고나 할 까?

 

다소곳하면서고 꼿꼿한 국화꽃의 절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즈음, 찬바람 불면 냉대를 받는 여름부채처럼, 인조화나 인공화에 밀린 생화처럼, 스스로가 외로운 가을국화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가을에 진정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와 마음을 나눌 손님이 필요한 모양이다.